[김화성 전문기자의&joy]안개 가득한 수종사 앞뜰… 구름도 산에 걸려 시간을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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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0일 03시 00분


두물머리 운길산 트레킹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한쪽엔 늙은 선승이 한 분 우뚝 서 계신다. 은행나무다. 해탈문 곁에서 500년 동안 묵언정진하고 있다. 키 35m에 가슴둘레 2m. 아직도 몸매가 울퉁불퉁 헌헌대장부다. 늦가을 수천 수만 마리의 노랑나비들이 선승의 머리 손 발 가슴 어깨에 앉아 나비잠을 잔다. 그래도 선승은 꿈쩍하지 않는다. 온몸에 ‘은빛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역시 오불관언,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도대체 선승의 면벽수행은 언제 끝나는가. 칼바람 몰아치는 동짓달 새벽, 가끔 마른기침 소리가 들린다. 속이 하도 썩고 또 썩어 곰삭은 두엄 냄새가 솔솔 새나온다. 남양주 운길산=서영수 전문기자 kuku@donga.com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한쪽엔 늙은 선승이 한 분 우뚝 서 계신다. 은행나무다. 해탈문 곁에서 500년 동안 묵언정진하고 있다. 키 35m에 가슴둘레 2m. 아직도 몸매가 울퉁불퉁 헌헌대장부다. 늦가을 수천 수만 마리의 노랑나비들이 선승의 머리 손 발 가슴 어깨에 앉아 나비잠을 잔다. 그래도 선승은 꿈쩍하지 않는다. 온몸에 ‘은빛살구’가 주렁주렁 매달린다. 역시 오불관언,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도대체 선승의 면벽수행은 언제 끝나는가. 칼바람 몰아치는 동짓달 새벽, 가끔 마른기침 소리가 들린다. 속이 하도 썩고 또 썩어 곰삭은 두엄 냄새가 솔솔 새나온다. 남양주 운길산=서영수 전문기자 kuku@donga.com


두물머리(二水頭)는 양수리이다. 두 큰 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이다.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첫물이 솟는다. 철원 화천 춘천 가평을 거쳐 두물머리에 이른다. 남한강은 삼척 대덕산이 뿌리이다. 영월 단양 제천 충주를 휘돌아 나온다.

북한강과 남한강은 조선 땅의 가슴을 적신다. 큰 핏줄 동맥과 정맥이다. 그 두 핏줄은 두물머리에서 하나가 된다. 꿈틀꿈틀 청룡과 황룡이 머리를 맞댄다. 느릿느릿 서로 몸을 비벼댄다. 운길산 발아래에서 몸을 섞는다. 운길산은 두물머리의 수호신이다.

운길산(雲吉山·610m)은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다.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 멈춘다’고 해서 운길산이다. 조곡산(鳥谷山), 초동산(草洞山), 수종산(水鍾山)이라고도 불렀다. 우리말로 ‘큰 사랑 산’이라고도 한다. 鳥安(조안)은 새소리가 맑고 듣기 좋아 붙은 이름이다. 鳥谷(조곡)은 ‘새 골짜기’란 뜻이다. 최근 조안면은 ‘슬로시티’로 지정됐다. 슬로시티엔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다. 느리게 살아야 새소리도 들린다. 슬로시티국제연맹은 조안면을 나무늘보처럼 느긋하게 살 수 있는 동네로 인정했다. 하기야 조안엔 연꽃단지생태공원, 먹골배, 다산 정약용 선생 생가 등이 있다. 그렇다고 곧바로 행복동네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옷을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들. 사람들만 울긋불긋 차림으로 그 겨울나무 사이를 지난다.
옷을 다 벗어버린 겨울나무들. 사람들만 울긋불긋 차림으로 그 겨울나무 사이를 지난다.
초겨울 아침 운길산은 축축하다. 나무들은 뼈만 남았다. 숲길 바닥엔 황갈색 참나무 잎들이 수북하다. 물기에 젖어 미끄럽다. 소리는 물을 먹어 죽었다. 밟아도 바스락거리지 않는다. 발아래 두물머리에선 물안개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스멀스멀 산을 감싸고, 나무를 먹고, 하늘을 지워버린다. 두런두런 앞서가는 등산객들의 말소리가 한순간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물안개 너머 어디서엔가 과속트럭들의 굉음소리가 줄달음쳐 간다. 해가 안개에 젖어 뿌옇다. 낮달 같다. 하늘의 미라가 돼 버렸다. 마을 개 짖는 소리만 시끄럽다. 맨 처음 짖는 개는 그래도 우렁차다. 그 다음 개들은 뭔지도 모르면서 따라 짖는다. 앙칼지고 집요하다. 무조건 미친 듯이 짖어댄다.

문득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 영락없는 새벽 풍경이다. 안개에 파묻힌 산 아래는 온갖 소리로 가득하다. 아우성 저잣거리이다. 산속에 들어서면 무시무종(無始無終), 시작도 끝도 없다. 물안개가 비단처럼 집요하게 허리를 휘감는다.

운길산은 수종사를 거쳐서 올라간다. 수종사 올라가는 길은 진중리와 송촌리 두 코스가 있다. 진중리 코스는 운길산역에서 왼쪽 굴다리를 지나 곧바로 오르면 된다. 송촌리 코스는 운길산역에서 송촌리까지 20분쯤 걸어가야 한다. 마을버스는 간격이 뜸하다. 송촌리엔 한음 이덕형(1561∼1613)의 별서 터가 있다. 별서(別墅)란 오늘날의 별장 같은 것이다.

한음은 오성(鰲城) 이항복(1556∼1618)과 항상 단짝으로 거론되는 그 한음이다. 나이는 이항복이 다섯이나 위지만 이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평생 벗으로 지냈다. 한음이 범생이 스타일이라면 오성은 짓궂은 개구쟁이였다. 공부는 한음이 더 잘했다. 두 사람은 1580년 나란히 문과에 급제했다(한음이 장원).

‘漢陰(한음)’은 ‘한양(漢陽)’과 대비되는 단어이다. 한양은 한강이북의 햇볕 쬐는 궁궐 땅을 말한다. 한음은 한강 이남으로 임금의 음덕을 입은 땅이다. 한음 이덕형의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즉 자신의 고향 조안면 송촌리를 한음이란 호로 나타낸 것이다. 한음은 1592년 서른하나에 조선역사상 최연소로 홍문관대제학에 올랐다. 임진왜란 땐 명나라에 가서 원군을 불러왔다.

1605년 한음이 마흔 네 살 때 이곳 송촌리에 별장을 짓고 살다가, 쉰둘에 이곳에서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한양의 이항복은 한달음에 달려와 구슬피 울었다. 염까지 하고 묘지명도 지었다. ‘나라가 있는 줄만 알고, 자신의 몸의 있음은 알지 못했다(知有國而不知有身)’. 사람들은 한음의 삶을 그렇게 정리했다. 송촌리엔 한음이 심었다는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남아 있다.
수종사의 팔각 5층석탑과 부도.
수종사의 팔각 5층석탑과 부도.
수종사(水鍾寺)의 ‘水鍾(수종)’은 ‘물종’이라는 뜻이다. 1458년 조선 세조 임금이 금강산을 다녀오다가 두물머리(二水頭, 兩水里)에서 하루 묵었다. 세조가 한밤중 자다가 맑은 종소리를 들었는데, 산에 올라가 살펴보니 바위굴 속에 16나한이 있었다. 종소리는 굴속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암벽을 울린 것이었다. 세조는 왕명을 내려 이듬해 절을 중창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얼마나 맑았으면 종소리로 들렸을까?

“주루룩! 철! 철! 철!” “쏴아! 찰! 찰! 찰!” 한여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는 요란하다. “촤아! 콸! 콸! 콸!” 계곡의 폭포수 소리도 우렁우렁하다. “또르륵! 또 또∼” 새봄 절집 처마 끝 고드름 물 떨어지는 소리는 청아하다. 바위굴은 천연 종이었던 셈이다. 물이 그 바위 종을 쳐서 맑은 소리를 자아냈으리라.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다산은 운길산유람기에서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옛 절이다. 절에는 샘이 있어 돌 틈으로 흘러나와 땅에 떨어질 때 종소리를 내므로 수종사라 한다고 전한다’고 했다. 세조 이전부터 수종사로 불렸다는 주장이다.

수종사는 날아갈 듯이 7, 8분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발아래 경치는 황홀하다. 그러나 물안개가 수시로 일어 보기가 쉽지 않다. 겨울 수종사는 더하다. 미리 일기예보를 살펴보고 갈 일이다.

수종사엔 세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나이가 무려 오백 살이다. 해탈문 뒤에서 해탈한 듯 의젓하게 서 있다. 울퉁불퉁 우람하고 잘생겼다. 한 그루는 높이 35m, 가슴둘레 2m, 또 한 그루는 높이 25m, 가슴둘레 1.2m. 뼈만 남은 검은 몸에 열매가 오종종 달려 있다. 발아래에도 떨어진 은행알이 수두룩하다. 구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휴일 중앙선 전철은 등산열차이다. 울긋불긋 등산복 차림의 승객으로 꽉 차 있다. 50대 이상이 눈에 많이 띈다. 평일엔 나이가 더 올라간다. 덕소역, 팔당역, 운길산역, 국수역에서 대부분 내린다. 이 중에서도 운길산역이 가장 붐빈다. 운길산을 통해 새재∼적갑산∼철문봉∼예봉산∼팔당역 코스로 가기 위함이다.

팔당역에서 예봉산으로 오르는 코스는 가파르다. 봉우리마다 사람들 발길로 꽉 찬다. 중간 중간 모여앉아 김밥 먹는 모습이 정겹다. 곳곳에 걸려 있는 시인들의 시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가 맘에 와 닿는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새재∼예봉산 코스는 다산능선이다. 젊은 날 다산 삼형제(정약전 정약종 정약용)는 철문봉까지 올라와 학문과 인생을 논했다. ‘학문을 밝혔다’는 뜻에서 ‘喆文峰(철문봉)’이다. 봉우리들이 올망졸망 그만그만하다. 그 봉우리들을 시소 타듯 오르내리는 게 즐겁다.

운길산∼예봉산 길은 산보길이다. 쉬엄쉬엄 해찰하며 걷는 길이다. 재잘재잘 수다 떨면서 가는 길이다. 물안개가 피면 아슴아슴해서 꿈길을 걷는 것 같다. 물안개가 걷히면 발아래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며 흐르는 모습이 황홀하다. 강물은 산에 막혀 돌아가지만, 멈칫멈칫 유장하다. 산은 물에 막혀 멈춰 섰지만, 삐죽삐죽 높지 않다. 안온하고 나지막하다.
▼다산과 추사는 없어도… 함께 보던 석양은 그대로▼



운길산은 다산 정약용(사진)의 뒷동산이었다. 산 중턱에 있던 수종사는 안마당이었다. 어릴 적 다산은 수없이 운길산과 수종사에서 뛰놀았다. 다산은 1783년 봄 스물한 살 때 진사과에 합격했다. 바로 그 자축연을 수종사에서 벌였다. 여러 친구들과 수종사에 가서 눈부신 달 아래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

‘내가 옛날 아이 적에 처음으로 수종사에 놀러간 적이 있었고, 그 후에 다시 찾은 것은 독서를 하기 위함이었다. 독서를 할 때는 늘 몇 사람과 짝이 되어 쓸쓸하고 적막하게 지내다가 돌아왔다.’

다산은 쉰여섯인 1818년 9월에야 18년의 유배에서 풀려났다. 비로소 운길산 아래 두물머리 마재 본가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운길산은 이제 어릴 적 그 운길산이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꼭대기까지 오르기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시로써 그 진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운길산의 수종사 옛날엔 우리 집 정원/마음만 내키면 훌쩍 가서 절문에 이르렀네/이제 보니 갑자기 높아 주군처럼 뾰족하니/하늘 높이 치솟아 묘연하여 붙들기 어렵네’ 다산은 고향에서 유유자적하며 남은 삶을 보냈다. 유배기간과 똑같은 18년 동안 두물머리에서 살다가 죽었다. 운길산 꼭대기는 몰라도 수종사는 자주 찾았다. 가끔 추사 김정희(1786∼1856), 초의선사(1786∼1866)가 다산을 찾을 때면 그들과 수종사에 머물며 차를 마셨다. 석양에 붉게 물든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시(詩)와 선(禪)과 차(茶)가 하나 되는 무료찻집 수종사의 삼정헌(三鼎軒).
시(詩)와 선(禪)과 차(茶)가 하나 되는 무료찻집 수종사의 삼정헌(三鼎軒).
수종사 석간수는 맛있다. 차 맛이 으뜸일 수밖에 없다. 수종사는 2000년 봄부터 무료찻집 삼정헌(三鼎軒)을 운영하고 있다. 삼정헌은 ‘시(詩)-선(禪)-차(茶)’가 하나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다실에 들러 녹차를 마실 수 있다. 녹차와 다구가 일체 갖춰져 있다. 스스로 보온병의 찻물로 차를 마신 후 설거지도 해야 한다. 발아래 경치에 넋이 나간다.

다산은 열다섯인 1776년 봄, 한살 위인 풍산 홍씨(1761∼1838)와 결혼했다. 그리고 결혼 60주년 기념일인 1836년 봄에 눈을 감았다. 부인 홍씨는 다산이 죽은 지 2년 뒤 78세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다산은 아들 여섯에 딸 셋을 낳았지만, 네 아들과 두 딸은 요절했다. 다산의 가슴에 자식 여섯을 묻었다. 두 아들과 딸 하나만 제대로 살아남았다. 다산은 죽기 사흘 전 유작시를 지었다.

‘육십년 세월 잠깐 사이 흘러가/복숭아나무 봄빛 신혼 때와 같구나//생이별이나 사별은 모두 늙음을 재촉케 하나니/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으니 성은에 감사하네//이 밤 목란사 소리 더욱 다정하고/지난 유배시절 임의 치마폭에 쓴 먹 흔적 남아있네//헤어졌다 다시 만난 우리 부부가/한 쌍의 표주박을 자손에게 남겨주노라’

김화성 기자 mars@donga.com



▼교통

▲중앙선(국철)=운길산역은 중앙선 용산, 이촌, 옥수, 왕십리, 회기역 등에서 바꿔 탈 수 있다. 용산에서 운길산역까지는 1시간 정도 소요.

▲승용차=서울 청량리→망우리고개→도농 삼거리→덕소 방향 직진→팔당대교→팔당댐→운길산역, 올림픽대로→미사리조정경기장→팔당대교→팔당댐→운길산역

▼먹을거리=운길산역이나 팔당역 부근엔 김밥이나 도시락 파는 집이 없다. 김밥 등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들은 휴일 등산객이 많을 때나 볼 수 있다. 선지해장국은 비닐 포장마차식의 간이건물에서 먹을 수 있다. 점심은 집에서 출발할 때 반드시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생수나 사탕 과일 등은 운길산역 간이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운길산 헬기장이나 정상 부근에선 행상들이 파는 커피나 컵라면도 사먹을 수 있다.

▼운길산새재 갈림길에서 도곡리(마을버스 종점)로 내려가면 덕소역으로 갈 수 있다. 덕소행 마을버스(99-2번)는 30분 간격(매시 정시, 30분)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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