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연칠 교수가 전통화법으로 그린 임권택 감독 초상(위)과 고은 시인 초상. 사진 제공 동산방화랑
수개월 동안 끝없이 이어지는 붓질. 보기 드물게 전통 화법을 고수한 초상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17일까지 계속되는 손연칠 동국대 불교미술학과 교수의 ‘이 시대의 초상’전.
미술사학자인 황수영 정영호 씨, 고은 시인, 임권택 영화감독, 이종상 김선두 화백,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해 작가가 늘 교류해온 주변 사람들의 초상화 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손 교수는 인물의 얼굴은 사실적으로 표현하되 옷선은 간략히 표현하는 전통 방식을 따랐다. 초상화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극도의 사실적인 표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육리문법(肉理文法)’이라고 한다. 얼굴 근육조직과 살결을 따라 선과 점으로 땀구멍까지 생생하게 표현하는 전통 화법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없이 계속되는 세밀한 붓질이다. “저는 빛으로 인한 음영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빛의 작용을 제거하고 선으로 입체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4∼5개월. 사실적인 얼굴 표현을 통해 그가 추구하려는 점은 대상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손 교수는 문화계의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김종규 이사장의 초상이 가장 잘 나왔다고 말한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되 화면 구성은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그는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을 많이 구사한다. 특히 사진을 트리밍하듯 얼굴이나 상체의 일부를 잘라내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좀 더 박진감 넘치게 하고 관객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는 원래 불화를 주로 그려왔다. 1970년대 고려불화를 모사하면서 우리 전통 인물화법에 매료된 그는 불화뿐만 아니라 의상대사 성삼문 허난설헌 등 역사인물의 영정도 그렸다. 그렇게 치면 인물화를 그려온 지 40년 가까이 되는 셈. 동시대인의 초상화에 매진하기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였다.
경주에서 생활하는 그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석굴암 본존불 모형 제작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석굴암 본존불 얼굴을 보면 그 표면은 면이지만 선들의 모임입니다. 무수히 많은 선이 지나간 것이죠. 결국 선의 움직임이 입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선을 긋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전통 화법의 인물화였다. 이번 전시는 2005년 이후 5년 작업의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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