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의 일부. 신(오른쪽)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가 고대 그리스신화의 인간적인 신의 모습에 영향을 받아 신화 속 제우스와 아폴론 등을 본떠 신을 묘사했다고 설명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어느 문명에서든 신은 종교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신은 언제나 종교 밖으로 나가 종교 아닌 것들 속으로 스며들어 가지요.… 서양문명이 특히 그렇지요. 따라서 내 생각에는 서양문명에 대한 이해를, 그 세계가 오랫동안 숭배해온 기독교의 신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비록 흔한 방법은 아닐지라도 썩 좋은 방법입니다.”
철학과 신학을 전공한 철학자로 다양한 저서를 출간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신을 통해 서양문명 전체를 조망하는 시도를 한다. 역사 속의 한 장면을 소설처럼 묘사한 뒤 이어지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이야기하듯 풀어놓은 덕분에 두꺼운 분량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책 첫머리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제시한다. 신을 너무나 인간적으로 묘사한 이 그림을 통해 저자는 ‘신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답은 ‘아니다’이다. 고대 그리스 무렵부터 제기됐던 이 논쟁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은 인간과 그 감정이나 형상 모두 닮지 않았다는 답을 내린 바 있다.
그렇다면 신은 대체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 저자는 각 부 제목으로 삼은 네 개의 명제를 통해 이 질문에 답하며 이와 관련된 서양의 철학적 신학적 논의와 그로부터 파생된 서양 문명의 성취를 훑어간다. 네 개의 명제는 바로 ‘신은 존재다’ ‘신은 창조주다’ ‘신은 인격적이다’ ‘신은 유일자다’.
“신을 가리키는 어떤 명칭보다 더 근원적 명칭은 ‘있는 자’다.”
중세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한 이 말은 서양 철학의 시초와도 직결된다. 서양 철학은 기원전 5세기경 ‘세상 모든 존재물의 근거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당시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속성을 ‘불변성’으로 파악하고 변하는 것, 즉 세상의 모든 존재물과 구분했다.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해 “존재(이데아)는 단일하고 영원불변하며 존재물(사물)들에게 ‘본질’과 ‘존재’ 그리고 ‘이름’을 주는 완전한 자”라고 정리했다.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완전한 존재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이는 존재의 본질을 변화로 본 히브리적 존재 개념과 합쳐져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준다. 나아가 ‘모든 존재에는 계층구조가 있다’는 생각을 낳기도 했다. 자연의 사다리에서든 사회의 사다리에서든 신이 그 사람을 거기로 불러낸 인생의 지위에 따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중세 기독교 교리이자 사회적 윤리로 발전했다.
대와 중세를 잇는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 이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신도 안식했다고 태초 직전의 세계를 설명한다. 저자는 여기서 우주 생성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빅뱅 이론과의 유사성을 발견한다. 이 ‘무로부터의 창조’는 신의 ‘절대적 독립성’ 내지 ‘전지전능성’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완전한 신은 무엇 때문에 세계를 창조했는가? 답은 바로 구원이다. 3세기경의 신학자 오리게네스는 성서에 근거해 신의 창조 이후 만물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느린 과정을 통해 하나하나 치유되고 새롭게 되고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돼 신에게 복종할 것으로 생각했다. ‘창조는 곧 구속(救贖)’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최근 몇몇 학자가 주장하는 진화론을 근거로 한 무신론을 함께 검토하며 창조론이 진화론을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발견한다.
서양의 신 개념에서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신을 유일자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서양 철학자 중 신플라톤주의학파의 플로티노스는 ‘일자(一者) 형이상학’을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일자의 가장 두드러진 본질이 ‘첫째’가 아니라 ‘절대적 초월’이라고 파악했다. 즉 유일자는 규정과 제한을 갖지 않음으로써 규정과 제한을 갖는 모든 존재물의 바탕이자 인식과 언명의 근거가 된다.
저자는 이 같은 유일자의 절대적 초월성을 “모든 존재물을 포괄하는 바탕이자 존재에 대한 긍정”이라며 “기독교의 신이 갖는 유일성도 바로 이렇다”고 말한다. 기독교의 본질은 배타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질투하는 신’으로 묘사되는 야훼의 모습은 전체 성서에 묘사된 것 중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존재이자 창조주인 신은 태초부터 영원까지 불변하고 유일하지만, 인간에게 계시되는 신은 역사 안에서 진보하는 인간정신과 문화에 따라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이해되고 표현된다.”
저자가 이처럼 기독교의 배타성, 폭력성을 비판하는 이유는 맺음말에서 좀 더 분명해진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서양문명은 애석하게도 신과 그의 이름으로 언급되던 최고의 가치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맞고 있다”며 “이것이 서양문명을 위기로 몰아가는 주된 원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그동안 서양문명이 저지른 과오도 작용한다. 결국 이 같은 가치 파편화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양문명을 관통하는 신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 심층을 탐구함으로써 그 안에서 좀 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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