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올해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이 한국 사회에던진 질문이다. 특히 올해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이후 전개된 여론 분열은 ‘민족통일’과 ‘국가(대한민국)’라는 가치의 충돌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근 발행된 계간 ‘철학과 현실’ 2010년 겨울호가 ‘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특집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인에게 스며 있는 국가관, 최근 젊은 세대의 변화한 국가관,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등을 짚어 봤다.》
■ 계간 ‘철학과 현실’ 겨울호 특집
우선 대한민국에 스며 있는 부정적 국가관이 논의의 대상이 됐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인의 국가감정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이란 논문을 통해 부정적 국가관의 형성 요인을 분석하고 ‘국가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존립과 번영을 추구하는 국가행동의 원리이자 법칙으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김 교수는 “여론의 분열은 민족통일과 국가이성이 충돌함으로써 발생했다”고 진단한 뒤 “민족통일을 당위로 국가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는 자기부정”이라고 좌파를 비판했다. 그는 남한 내부의 부정적인 국가의식 원인으로서 근대국가 형성기에는 일제 군국주의 국가에 수탈을 당했고, 광복 이후에는 국가의 폭력에 대항해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야 했던 역사를 원인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민족통일과 국가이성의 화해를 위해 ‘공정과 정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를 강조하는 남한 사회에서 공정을 먼저 구축한 뒤, 그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국가이성의 확장을 통해 북한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민족통일을 이룰 때 국가이성과 민족의식 사이의 모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의 주체가 될 젊은 세대의 국가관도 중요한 문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대 젊은 세대의 국가관’이란 논문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북한을 별개의 정치공동체로 간주하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성 세대가 북한 주민을 언젠가 당연히 합류시켜야 할 우리나라 구성원으로 간주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강 교수는 “젊은층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향후 세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방어적 수동적 폐쇄적 민족주의적 국가관이 아닌 개방적 포용적 적극적 국가관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국가의 철학과 한반도 현대사’란 논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 성취는 마키아벨리의 국가이성론의 길을 따랐다고 분석했다. 즉 ‘신생 대한민국의 군주’였던 이승만과 박정희가 위기의 시대를 견인했고, 이후 ‘87년 체제’가 상징하듯이 ‘자유시민이 지배하는 공화정’으로 성공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21세기 한국의 과제는 이런 공화주의적 혼합정치체제의 가능성을 더 내실화해 뿌리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기획특집에 대해 관련 학계에서도 관심을 나타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정치철학)는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로 한국사회에서는 국가공동체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김호기 사회학과 교수는 “올해는 좌파 우파 모두 국가를 재인식해 볼 수 있는 한 해였다.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복지 이슈는 국가가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해, 천안함 폭침 등 안보 이슈는 공동체인 국가를 위해 국민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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