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하늘에 빗방울까지 떨어지는 매서운 날씨. 제주의 강한 바람에 움츠릴 법도 하지만 몽골 행위예술가 엥흐벌드 턱미드시레우 씨는 옷을 훌렁 벗고 팬티 차림이 됐다.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 모형의 내부로 들어가더니 미리 준비한 말똥을 바닥에 뿌렸다. 그리고는 “어허∼” “에헤∼” 하는 괴성과 함께 ‘말똥 밭’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불같은 심장’이란 제목의 행위예술이었다. 관객 50여 명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떼지 못했다.
17일 제주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몽골 예술교류축제(한국문화예술위원회, 외교통상부, 몽골예술위원회 주최) 개막식. 한국과 몽골의 예술가 19명이 몽골과 제주에서의 영감을 토대로 행위예술, 설치미술, 영상 등 20여 작품을 30일까지 전시한다. 궂은 날씨 탓에 개막식 관객은 200여 명에 그쳤지만 개막식은 당초 예정보다 1시간 정도 늘어나 3시간 가까이 이어지며 열기를 뿜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몽골예술위원회와 2008년부터 해마다 한국 예술가들이 몽골 남고비의 달란자드가드로 건너가 현지 예술인과 함께 작업하는 ‘노마딕 아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축제는 몽골 예술인들의 답방 형식으로 이뤄졌다. 행위예술가인 엥흐자르갈 강바트 씨를 비롯해 9명의 몽골 예술인들은 8일 제주에 도착해 큐레이터 김이선 씨 등 10명의 한국 예술인과 함께 우도, 성산일출봉 등을 답사하면서 작품을 제작했다.
몽골에 갔던 한국 예술가들이 끝없는 초원과 쏟아질 듯한 별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처럼 몽골 예술가들은 제주의 푸른 바다와 강한 바람에 환호했다. 바다를 처음 봤다는 바야르막나이 씨는 “가슴이 설레 잠이 안 올 정도였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평선은 몽골의 지평선과 닮았지만 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턱미드시레우 씨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바야르체첵 다시던더브 씨는 한지를 이용한 설치작품 ‘누가 태양을 훔쳤을까’와 행위예술인 ‘얼라이브’를 통해 제주의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했다. 영상아티스트 바야르막나이 씨는 ‘돌아가는 세계의 거울에 비친 모습’이란 이름의 비디오아트를 선보였다. 제주의 바다, 오름, 해안도로 등의 영상에 몽골 음악을 접목한 작품이다.
한국 예술가들에게도 특별한 기회였다. 화가 이인 씨는 제주의 물(바다), 하늘(노을), 땅(오름), 불(화산)을 4개의 대형 화폭에 옮긴 ‘색색풍경’을 전시한다. 그는 “2년 전 몽골 레지던시에 참가했던 경험은 우리 문화의 기원을 찾는 나의 작업에 큰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제주 바다와 물방울을 설치미술로 표현한 권혁 씨는 “구체적인 성과도 좋지만 몽골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문화예술위는 국내 작가들의 창작 능력 향상을 위해 몽골뿐만 아니라 체코, 터키 등으로 대외 예술교류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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