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눈여겨본 영화 두 편은 그 주인공들의 팔자가 극과 극을 달린다. 먼저 동명의 에세이를 원작으로 하는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9월 30일 개봉). 듣기만 해도 로맨틱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안정적 직장과 미국 맨해튼의 번듯한 아파트와 아내에게만 충실한 잘나가는 남편이라는 ‘3박자’를 갖춘 31세 여성 저널리스트가 어느 날 ‘정말 이게 내가 진정 원했던 삶일까?’라고 자문하면서 모든 현실을 놓아버린 채 세계여행에 나선다는 줄거리. 반면 ‘베리드’(8일 개봉)는 ‘땅에 파묻힌(buried)’이라는 살벌한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이라크에서 근무하던 미국인 트럭 운전사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돼 관 속에 생매장된 채 고갈되어 가는 산소를 걱정하며 죽음을 기다린단 얘기다.》
‘먹고…’는 주인공 리즈가 여행하는 이탈리아, 인도, 발리(인도네시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과 이국적 정취가 일품인 반면에 ‘베리드’는 러닝타임 90분 내내 컴컴하고 비좁은 관 속에 카메라가 머물며 발버둥치는 주인공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의 절망적 모습을 도착적으로 관찰한다. 아, 존엄성을 가진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둘은 왜 이리도 상극의 처지인 걸까. 두 주인공 리즈와 콘로이가 가상의 뜨거운 언쟁을 벌인다. 콘로이의 선제공격.
콘로이=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아있네. 이탈리아에서 실컷 먹고 놀고, 인도에 가서 기도하고, 발리 해변으로 가 가슴에 털 난 브라질 남자와 눈이 맞아 2주 내내 섹스하고 방광염에 걸리는 걸 가지고 당신은 ‘자아를 찾는다’고 말하는 모양이지? 내가 어두컴컴한 관 속에서 깨어나 살려고 발버둥칠 때, 당신은 스파게티에다 치즈 가루를 흠뻑 뿌려 먹으며 ‘아아, 이런 작은 것들의 기쁨을 그동안 망각하고 살아왔어’ 하다니….
리즈=말이 좀 험하시네. 살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을 충분히 동정해. 하지만 영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나의 여행을 깎아내리진 않았으면 좋겠어. 먹고 즐기는 것, 기도하는 것, 그리고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난 오히려 당신에게 묻고 싶어. 누가 이라크로 가라고 했어? 그건 당신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처한 행위잖아? 더 많은 돈에는 언제나 더 많은 리스크가 따르기 마련 아니야?
콘로이=하긴, 당신이 나처럼 먹고살 걱정이 있으면 이탈리아니 인도니 발리니, 이런 곳을 다닐 엄두나 내겠어? 도대체 당신이 나오는 영화가 가진 문제의식이란 게 뭐야?
리즈=이 사람아. 영화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야. 관객의 감성적 허영을 충족시켜줘야 하지. 이탈리아에서 실컷 먹고 즐기고, 인도에서 명상으로 자기를 성찰하고, 발리에서 멋지고 진실한 남자를 만나 석양을 바라보며 뜨겁게 사랑하는 것, 이 세 가지는 30, 4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야.
콘로이=이탈리아, 인도, 발리를 돌아다니면서 돈 펑펑 써야만 자아를 찾는다면, 이 세상에 자아를 찾는 여자가 몇 명이나 되겠냐? 주인공의 처절하고 암담한 상황을 직접 목격한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자신이 처한 비루한 현실이 오히려 달콤하단 사실을 깨닫게 돼. 이것을 두고 바로 불편한 영화가 갖는 순기능이라고 하지.
리즈=난 ‘날로 먹으려고’ 하는 당신 영화의 기본적인 태도부터가 문제라고 봐.
콘로이=그게 무슨 고속전철 화장실 칸에서 옆차기 하는 소리야?
리즈=너희 영화 제작비가 얼마니? 아마 150만 원쯤 들지 않았을까? 나무 관 1개, 지포라이터 1개, 스마트폰 1개. 이거 말곤 아무것도 없잖아. 참, 영화 중간에 관 속으로 쓱 들어오는 독사 한 마리도 있겠지. 이건 5만 원쯤 하려나? 이런 싸구려 영화가 나처럼 자본을 무지하게 들인 영화와 똑같은 관람료를 받는다는 건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두 주인공의 설전은 끝이 나질 않습니다. 자아 찾기를 통해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삶을 사는 리즈,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진수를 보여주는 콘로이. 여러분은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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