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제작자, 감독, 기술스태프 등 영화인 16명과 서울 종로구 와룡동 문화부 회의실에서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영화계 현안에 대해 현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유 장관은 “한동안 다른 일은 접어두고 영화 쪽에만 매달려 촬영 현장에도 가 보면서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날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화는 2008년 2월 취임한 유 장관이 영화계와 영화산업의 오랜 문제들에 기울인 관심이 다른 분야에 비해 부족했음을 보여줬다. 김수진 영화사 비단길 대표 등 제작자들은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제작비 투자액에 대해 6∼8%의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관행을 바로잡아 달라”고 말했다. 올해 ‘그랑프리’를 연출한 양윤호 감독은 “작품 기획 초기에 최소한의 작업 비용을 마련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기획아이템을 지원하는 영진위 제도가 내년부터 없어지게 돼 창작활동은 더 위축될 것”이라고 했다. ‘말아톤’을 제작했던 신창환 PD는 “불법복제에 대해 더 강력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한 영화산업의 선순환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이들의 의견에 대해 “그런 문제가 고쳐지지 않고 있었느냐”며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법복제는 그동안 다른 무엇보다도 집중적으로 시정하려 노력해 온 사안이었다”는 장관의 답변에 김수진 대표는 “강남이나 종로에 다녀보면 대로에서 버젓이 불법복제 영화 DVD를 팔고 있다”고 했다.
부처의 장관이 한 분야의 모든 문제를 속속들이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관련 실무를 일임받아 진행하는 영진위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거듭 지적돼온 내용을 들으면서 새삼 놀라워하는 장관의 모습에 참석자들은 못내 서운한 기색이었다.
이날 밤 새 영화 ‘황해’ 시사회 뒤풀이 자리에서 유 장관은 “배우 시절 무대공연에 비해 영화 경험은 길지 않았다”고 했다. 기획아이템 지원 부족 문제에 대해 “공연은 2, 3년 뒤를 내다보며 작품 지원을 심사하는데 영화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한 대로 그간의 업무 방식에 개인적 이력이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르면 1월 초 개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날 들은 현안 중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유 장관 자신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길다고 해서 꼭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