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쑥쑥!… 열려라, 책세상!]스산했던 70년대, 열한살 소녀의 고단한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3일 03시 00분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지음 184쪽·9000원·사계절


1970년대 경기 평택의 한 마을. 열한 살 소녀 연재의 가족은 엄마가 외삼촌 빚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고향생활을 청산하고 미군부대 인근으로 이사한다. 날마다 생선을 떼다 행상을 나가는 엄마,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하는 아버지, 공부 잘하는 오빠와 여동생 셋이 연재네 식구들이다. 연재는 어린 나이지만 집안 살림을 도맡았다.

형편이 어려운 연재네는 외숙모네 방 하나를 얻어 더부살이 하지만 외숙모네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동갑내기 외사촌 재순이는 안마당 꽃밭을 자기 마당이라며 얼씬도 못하게 하며 연재를 따돌린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그때 연재네 동네에도 마을 길 넓히기, 화투 없애기, 초가지붕 없애기 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잘살게 해주겠다는 개발의 방식은 잔인했다. “노래기가 줄줄 내려오고 비도 새는 집을 번듯한 집으로 바꿔 주겠다”는 사람들은 초가지붕을 마구 뜯어내 불태워 버렸다. 거리는 온통 불바다로 변했다. 연재는 낡은 집이 보기 싫었지만 하굣길에 집이 불타는 것을 보고 분노했다. 그런 와중에 연재 오빠는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어린이의 희망찬 미래”라며 새마을운동 웅변대회에서 군수상을 받았다.

목수인 외삼촌이 철물점 처마에 잇대어 판잣집을 지었다. 똘이네 처마에 잇대어서도 판잣집을 하나 만들어 연재네와 재순이네는 임시 거처를 얻었지만 판잣집은 밖보다도 더 추울 만큼 엉망이다. 판잣집의 이름은 꺽다리집. 도랑 때문에 각목을 여기저기 받쳐서 바닥을 만들고 나무 계단을 몇 개 올라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꺽다리집은 키만 껑충하니 커서 공중에 뜬 것처럼 보였다. 연재는 ‘기와집 처마에 애걸하듯’ 매달린 판잣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누더기 같은 집이 불쌍하고, 판잣집 밑에서 먼지바람을 고스란히 뒤집어 쓰고 있는 살림들이 불쌍하고, 점점 더 초라해지는 자신이 처량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나쁜 어린이표’ 등의 동화를 쓴 황선미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책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청소년기 내내 나는 먼지바람 스산한 객사리의 까칠한 반항아였다”며 이런 기억이 그의 작품의 색깔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녀석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관찰하고 싶은 눈이 어느덧 생겨 버렸다”며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의 기억을 객관화해 성장 소설로 냈다. 광폭했던 시절, 근대화의 그늘이었던 가족의 해체 문제를 다뤘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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