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메리 크리스마스! 바비와 함께 꿈꿔봐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4일 03시 00분


■ 51세 맞은 바비, 남자친구 켄과 서울 나들이

‘바비’의 남자친구 ‘켄’이 내년에 데뷔 50주년이 된다. 바비는 1959년, 켄은 1961년 데뷔했다. 이 두 인형을 만드는 세계 최대의 완구회사 마텔은 이를 기념하는 ‘2010 바비 & 켄 어워즈’ 행사를 14일 서울에서 열었다. 바비와 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크리스마스이브에 들어보자. 사진은 2010년 켄(왼쪽)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나온 한국인 바비. 사진 제공 마텔
‘바비’의 남자친구 ‘켄’이 내년에 데뷔 50주년이 된다. 바비는 1959년, 켄은 1961년 데뷔했다. 이 두 인형을 만드는 세계 최대의 완구회사 마텔은 이를 기념하는 ‘2010 바비 & 켄 어워즈’ 행사를 14일 서울에서 열었다. 바비와 켄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크리스마스이브에 들어보자. 사진은 2010년 켄(왼쪽)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나온 한국인 바비. 사진 제공 마텔
크리스마스이브인 오늘. 산타할아버지가 30대 여성의 머리맡에까지 선물을 가져다주신다면 그 선물은 바비 인형이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이 있다.

이맘때 공연되는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서는 소녀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호두까기인형이 꿈속에서 왕자로 변신해 과자의 나라로 안내한다. 혹시 바비도 꿈속에 나타나 나를 캘리포니아 주 말리부에 있는 자신의 ‘드림 하우스’로 이끌진 않을까.

세계 최대 완구회사 ‘마텔’이 바비 탄생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선보인 바비의 집은 사진만 봐도 설렜다. 핑크빛 카펫이 깔린 침실, 핑크빛 하이힐 50켤레가 진열된 드레스룸, 핑크빛 폴크스바겐 뉴 비틀…. 바비 집에서 보는 구름은 핑크빛 솜사탕이 아닐까.


바비는 내 손을 붙들고 파티를 누비며 자신의 디자이너 친구들을 소개해줄 것만 같다. 지난해 뉴욕 패션위크를 사실상 바비의 50세 생일파티로 만든 디자이너들 말이다. 베라 왕, 도나 캐런, 캘빈 클라인 등 패션계 거물들이 일제히 바비의 생일 축하 옷을 만들었다.

1959년 세상에 처음 나올 때 패션모델 직업을 가졌던 바비는 2000년 마텔에 합류한 수석 디자이너 로버트 베스트 씨를 만나 더욱 화려한 패셔니스타(뛰어난 패션 감각과 심미안으로 대중의 유행을 이끄는 사람)가 됐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 세계 최대 규모로 문을 연 ‘바비 와와’(와와는 중국어로 ‘인형’이란 뜻)란 이름의 바비 전문 숍에서는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유명 스타일리스트인 패트리샤 필드 씨가 바비의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필드 씨는 말했다. “수많은 스타들에게 옷을 입혀봤지만, 그중 바비가 최고의 ‘잇 걸’(트렌드를 선도하는 여성)이었죠.”

거대한 글로벌 패션산업을 움직이는 바비와 14일 가상 인터뷰를 했다. 이날 서울에서 열린 ‘2010 바비 & 켄 어워즈’ 행사 참석차 방한한 스티븐 치애니즈 마텔 아시아 퍼시픽 라이선싱 총괄 디렉터와의 인터뷰, 최근 미국에서 출판된 책 ‘10년-바비 패션모델 컬렉션’과 ‘바비-희귀한 아름다움’, 명품·아트북 출판사인 ‘애술린(Assouline)’이 2008년 한정판으로 펴낸 500달러짜리 ‘바비(Barbie)’ 브랜드 북 등을 참고해 구성한 인터뷰다.

바비와의 인터뷰는 치애니즈 디렉터가 묵었던 서울 중구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의 스위트룸에서 진행됐다.

―바비, 반갑습니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편집숍 ‘10 코르소 코모’에서 극소량 수입해 팔았던 ‘애술린’ 바비 북은 75만 원으로 비쌌는데도 다 팔려 지금은 구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과 이 귀한 화보집을 한꺼번에 만나니 감격스럽습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1947년 발표해 ‘뉴 룩’(가슴은 부풀리고 허리는 조인 새로운 스타일)이란 찬사를 받은 재킷, 디자이너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 씨가 1970년대 첫선을 보인 랩 드레스…. 패션역사에 길이 남을 옷들을 입고 모델처럼 사진을 찍었으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지금까지 10억 벌 이상 입어봤는데 그중엔 세계적 디자이너 70여 명의 옷도 있습니다.”

패션모델… 의사… 대선후보… 뉴스앵커… 시대와 함께 바비도 진화중

비 한 명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디자이너, 패턴 메이커, 스타일리스트 등 100명이 관여한다. 마텔은 바비를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패션 아이콘’으로 창조해냈다. 사진 제공 마텔
비 한 명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데 디자이너, 패턴 메이커, 스타일리스트 등 100명이 관여한다. 마텔은 바비를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패션 아이콘’으로 창조해냈다. 사진 제공 마텔

―1959년 데뷔할 때 흑백의 줄무늬 니트 수영복을 입고 카메라를 들었더군요. 눈부신 개미허리라 실례를 무릅쓰고 신체 사이즈를 여쭤봐야겠습니다.

“키 29.2cm, 몸무게 205.5g, 가슴둘레 12.7cm, 허리둘레 8.26cm, 엉덩이둘레 13.2cm입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대의 연구팀은 제 체형을 가진 여성이 10만 명당 1명뿐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어요. 저 같은 몸매를 가진 여성은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월경을 위해 필요한 여성의 최저 체지방보다 17∼22% 결핍된 상태라고 해요. 사람 몸으로 환산하면 가슴둘레 39.7인치, 허리둘레 17.7인치, 엉덩이둘레 31.4인치가 된다죠. 제가 어린 소녀들에게 왜곡된 신체관을 심어준다는 비판이 한동안 거셌어요. 그 문제를 피하지도, 그렇다고 파고들지도 않았더니 근래엔 잠잠하네요.”


―처음 직업이 패션모델이었죠.

“네. 이후 120여 종류의 직업을 가져봤어요. 1961년 승무원, 1973년 외과 전문의, 1986년 록스타, 1992년 ‘소녀당(Girl Party)’ 출신의 대선후보, 2006년 발레리나, 2010년 뉴스 앵커와 컴퓨터 엔지니어…. 직업과 인종에 따라 화장법과 헤어스타일, 패션이 달라지긴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여성성을 저버리진 않았습니다. 왜 여성 정치인과 기업인은 어두운 옷을 주로 입나요? 할리우드 영화 ‘금발이 너무해’를 보셨죠? 핑크색 옷을 입고 당당하게 사회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주인공(리즈 위더스푼)의 모습이 ‘바비 스타일’입니다.”

마텔에 따르면 바비 인형은 세계적으로 1초에 2개가 팔린다. 지난해 마텔(직원 수 2만7000명)의 글로벌 전체 매출은 59억3432만 달러(약 6조8244억 원). 바비뿐 아니라 ‘피셔 프라이스’와 ‘핫 휠’ 등 다른 완구 브랜드도 갖춘 마텔에서 바비 매출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다. 바비의 사업영역은 크게 인형, DVD 등 엔터테인먼트, 라이선싱(상표 등록된 재산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상업적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 등 세 가지다.

요즘엔 소녀들조차 인형보다는 닌텐도 게임기를 갖고 논다. 마텔은 이런 위기를 라이선싱 비즈니스 확대로 돌파했다. 한국은 올해 바비 매출 700억 원(예상치)에서 ‘바비 신발’(제작사는 ‘세라’) 등 라이선싱 매출이 인형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치애니즈 디렉터는 “라이선싱 제품은 브랜드 대사 역할을 한다”며 “바비 이불을 덮고 바비 옷을 입는 여성들은 바비와 친밀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마텔이 아시아 시장을 주목한다던데, 그럼 아시아인 바비가 앞으로 많아지나요.

“네. 그럴 겁니다. 마텔이 2000년대 초반 어른을 메인 소비자 타깃으로 잡은 최초의 시장도 일본이었거든요. 중국 시장도 가파르게 성장 중입니다.”

―옷은 많이 입어본 사람이 대개 잘 입습니다. 숱한 옷을 입어봐 ‘오리지널 슈퍼모델’이라 불리는 당신이 연말 모임에 추천하는 패션 스타일은….

“코코 샤넬 여사가 좋아했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신통방통한 아이템입니다. 진주 목걸이, 아이보리와 검은색의 투톤 슈즈를 곁들이면 금세 ‘샤넬 레이디’로 변신할 수 있어요. 파티에서 돋보이고 싶다면 제가 아시아 수집가들을 위해 2004년 선보인 중국인 바비 패션을 추천하겠습니다. 앞머리를 일자로 내린 검은색 단발에 빨간색 실크 치파오와 구두를 매치하면 동양 여성의 신비한 섹시미를 발산합니다.”

현재 바비의 스타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마텔의 수석 디자이너인 로버트 베스트 씨다. 뉴욕 파슨스 스쿨을 나와 ‘도나 캐런’과 ‘아이작 미즈라히’를 거친 그는 2006년엔 미국 ‘프로젝트 런웨이-시즌3’(실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실력을 겨루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바비의 패션성과 자신의 인지도를 동시에 높였다.

―트렌드 리더인 당신은 요즘 어떤 패션을 즐기고 있나요.

“1960년대 복고풍! 내 친구 베스트가 미국의 인기 TV 시리즈물인 ‘매드 맨(Mad man)’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에요. 치마폭이 종 모양으로 퍼지는 꽃무늬 민소매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답니다. 금발의 파마 볼륨은 가급적 풍성하게 만들고요. 한껏 요조숙녀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땐 목에 작은 스카프를 맵니다.”

―이번 서울 나들이의 계기는….

“저보다 두 살 연하인 남자친구 ‘켄’이 내년에 데뷔 50주년이 되거든요. 우리는 43년간의 연인 관계를 2004년 밸런타인데이에 정리했지만 여전히 좋은 친구 사이로 지낸답니다. 올해 여름 영화 ‘토이스토리 3’에 함께 출연한 후 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오랜 세월 켄이 묵묵히 절 많이 도왔으니 이젠 제가 켄을 ‘띄울’ 차례이겠죠?(웃음)”

―1959년 최초의 빈티지 중 한 바비는 2007년 한 인형 경매에서 2만7450달러(약 3150만 원)에 낙찰됐다고 합니다. 저도 30년 전 갖고 놀던 바비를 찾아봐야겠어요.

“아직도 간직하고 있나요? 그런데 경매에 나왔던 그 바비는 놀랍도록 깨끗했답니다.”

오래된 기억 속 나의 옛 바비는 긴 머리카락이 한없이 엉킨 채 벌거벗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하자 인터뷰를 끝낸 바비는 “지금도 (새 바비를 들여 애지중지하기에) 늦지 않았다”는 말을 미소와 함께 남겼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디자인=김원중 기자 paranwon@donga.com

▼한국 디자이너가 풀어본 ‘바비 패션’▼
‘2010 바비 & 켄 어워드’ 열려
디자이너 김재현 씨가 ‘2010 바비 & 켄 어워드’ 패션쇼에서 선보인 엄마와 딸의 바비 패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디자이너 김재현 씨가 ‘2010 바비 & 켄 어워드’ 패션쇼에서 선보인 엄마와 딸의 바비 패션.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4일 서울 중구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 서울의 크리스털볼룸. 조명이 켜지자 모델들이 무대 위로 걸어나왔다.

한 모델은 화이트 셔츠에 얇은 오간자 소재의 타이트한 롱스커트를 입었다. 속이 비치는 천으로 하반신 굴곡을 감싼 자태가 인어공주 같았다. 분홍색과 겨자색은 한복에서 익숙한 조합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 씨가 만든 바비 옷이었다. 진 씨는 “쐐기풀로 옷을 지어 저주를 풀었던 동화 속 공주처럼 어릴 적 희망을 표현했다”고 했다.

러플이 달린 빨간색 원피스와 허벅지까지 리본을 감싸 맨 하이힐 차림의 젊은 여성은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나왔다. 소녀는 분홍색 발레리나 스커트를 입고 연분홍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엄마와 딸의 ‘바비 패션’인 셈이다. 패션 브랜드 ‘자뎅 드 슈에뜨’의 디자이너 김재현 씨는 가슴에 부엉이가 그려진 티셔츠에 로맨틱한 롱스커트를 매치해 바비 스타일을 표현했다. “어릴 적부터 세뱃돈을 털어 바비 인형의 옷을 샀어요. 그때부터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것 같아요.”

마텔은 이날 ‘2010 바비 & 켄 어워드’ 시상식과 함께 이 패션쇼를 열었다. 2003년 시작해 지금까지 일본과 대만에서 각각 두 번씩 진행된 ‘아시아 바비 어워드’가 올해 ‘바비 & 켄 어워드’로 확대돼 서울에서 열린 것이다. 아시아 시장의 파이를 키우려는 마텔이 한국 시장도 비중 있게 본다는 뜻이다. 켄은 1959년 데뷔한 바비의 뒤를 이어 1961년 나온 바비의 2세 연하 남자친구 인형이다.

마텔 측은 2011년 켄 탄생 50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디자이너 18명에게 디자인을 의뢰했다. 홍승완, 곽현주, 최범석, 홍혜진 씨 등 요즘 ‘뜨는’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바비와 켄을 풀어냈다. 배우 황정음, 김범 씨는 이날 어워드에서 각각 한국의 바비와 켄으로 선정됐다. 김 씨는 한껏 상기돼 있었다. “바비의 남자친구가 된 게 신나고 떨려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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