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의 대차대조가 확연하게 두드러지는 시기입니다. 성실한 생명활동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돌아보면 이룬 것보다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래서 새해에 대한 각오를 하고 모든 것에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1년을 설계합니다. 그와 같은 회오와 각오가 1년 단위로 되풀이되면서 우리네 인생은 저마다 다른 내용으로 뿌리가 깊어집니다.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의 패턴은 동일합니다. 하루 24시간 단위로 날마다 자고 일어나 활동하는 사이클, 그것이 모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고 평생이 됩니다. 수직으로 활동하고 수평으로 잠자리에 드는 하루하루가 죽는 날까지 동일하게 되풀이됩니다. 하루가 모여 평생이 되고 평생을 압축하면 하루와 동일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수평으로 누워 있다가 수직으로 성장하고 나이 들어 죽으면 다시 수평으로 돌아가는 일생의 구조도 동일합니다. 그와 같은 인생의 시스템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날마다 되풀이되는 수평과 수직의 사이클 속에서 우리는 인생 행위를 반복합니다. 반복은 학습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고 미숙한 것을 숙련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인생을 학습하기 위한 과정, 다시 말해 인생 공부를 위한 과정입니다. 제사 지낼 때 올리는 지방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명시하듯 인간의 존재성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배우는 ‘학생’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세속을 겪으며 제대로 배우고 학생으로서의 신분에 맞게 인생공부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찰에 가면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를 보게 됩니다. 그중에 설산에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이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경전에는 석가모니가 출가하여 설산으로 가지 않고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으로 갔다 하여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산수도상은 석가모니의 고행을 상징하는 배경으로서의 설산이지 실제 히말라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우리처럼 세속에서 태어나 세속으로 출가하고 세속을 계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것은 설산보다 더 높은 사실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모든 것은 세속에서 시작해 세속에서 끝난다는 것.
우리는 하루하루 세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바탕으로 저마다 다른 인생 공부를 진행합니다. 공부가 잘될 때도 있지만 뜻대로 되지 않거나 하기 싫을 때도 많습니다. 모든 걸 때려치우고 유혹과 욕망의 난장으로 홀연히 일탈하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우리에게 동일한 시스템과 사이클이 되풀이되는 이유가 학습을 위한 것이라는 걸 눈치 챈다면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습니다. 인생살이와 세상살이의 이치가 그와 같으니 마음에 높은 설산을 세우고 언제나 그것을 우러르며 참다운 삶의 기개를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설산으로 가는 마음,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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