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팅커스 폴 하딩 지음·정영목 옮김 248쪽·1만2000원·21세기북스

“땅, 땅. 띵, 띵, 띵. 땅따당다당. 냄비의 물통에서 소리가 울렸다. 하워드 크로스비의 귀에서도 소리가 울렸다.…머리가 종의 추라도 되는 양 댕댕 울려댔다. 냉기가 그의 발가락 끝으로 튀어 올라 울리는 소리의 잔물결을 타고 몸 전체로 퍼져나가면 마침내 이가 덜거덕거리며 부딪히고 무릎이 비틀거려, 그 자신이 풀려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스스로 몸을 끌어안아야만 했다.”

아름답고도 무섭다. 남자가 간질발작을 일으키는 이 부분은 놀랍도록 유려한 미문으로 쓰였지만, 그로 인해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려질 때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팅커스’는 땜장이라는 뜻. 주인공 하워드의 직업이다.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가정을 떠나야 했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설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여든 살의 조지가 아버지 하워드의 부재에 대한 상처를 내보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간질병을 앓았던 하워드는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입에 젓가락을 물려주는 따뜻한 아내의 도움으로 삶을 지탱한다. 그러나 그가 발작 중 아들 조지의 손가락을 심하게 물자 아내는 남편을 정신병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아내의 계획을 눈치 챈 하워드는 집을 나가버린다.

집을 떠난 하워드는 길에서 자신처럼 훌쩍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홀로 골방에서 글을 쓰던 목사 아버지는 언제부턴가 주일예배 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보낸 날 하워드는 처음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이 3대에 걸친 이야기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상처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큰 잘못 없이 지내왔음에도 이들은 가족과 함께하는 소박한 행복마저 누릴 수가 없다. 운명에 순응하면서 고독과 그리움을 견뎌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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