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史·哲의 향기]예술가가 발견하고 표현하는 건 사물에 깃든 위대함과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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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5일 03시 00분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이종인 옮김 344쪽·1만6000원·즐거운상상

“우리가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에 유익하다. …그것은 결코 우리 생활 밖에 있는 여분의 어떤 것이 아니다.”

저자는 20세기 초 활동한 미국 화가다. 보수적인 미국 화단의 틀을 깨고 ‘8인 그룹’을 결성해 독립 전시회를 개최한 인물이자 미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다. 미술교사이기도 했던 저자가 생전에 남긴 기고문과 강연문, 비평문 등을 엮어 미국에서 1923년 출간됐던 책을 국내 초역했다. 책은 그림 그리기에 대한 전문적 조언부터 예술가의 자질과 태도, 예술의 가치와 의미 등 예술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짧은 글을 모았지만 저자 고유의 예술관이 일관되게 녹아 있다.

“표현하는 것보다 살펴보는 것이 더 어렵다. 예술의 가치는 예술가가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사물을 깊숙이 꿰뚫어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예술은 단지 아름다운 대상을 그대로 본떠 그리는 데서 탄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로소 아름다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아름다움을 포착해낼 줄 아는 사람이 곧 예술가다.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을 그려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한 예술의 즐거움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법을 발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렘브란트를 예로 든다. 렘브란트는 신사든 거지든 구분하지 않고 대상이 가진 나름의 아름다움을 화폭 위에 표현해낸 화가였다. 나아가 저자는 “예술이란 결국 이 세상 전역에서 발견되는 ‘질서에 주목하기’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질서란 어떤 사물에든 내재돼 있는 위대함과 경이를 가리킨다. 예술가가 이 질서를 발견하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무제한적 자유가 필요하다.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그 나무에게 맞는 방식으로 마음껏 자랄 수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기이한 문명’ 속에 살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공포와 피상성(皮相性)으로 겹겹이 싸여 있어 아름다움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위대함은 어디에서나 존재하고, 누구에게서나 발견된다. 그런데 문명은 이 위대함을 질식시키느라 바쁘다.” 저자는 미술계의 기존 질서나 수상제도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관점을 취한다. 작품은 예술가 고유의 것이며 객관적 자료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보는 예술의 탄생은 어떤 것일까. “세상에는 계시의 순간들이 있다.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으로 전화(轉化)되면서 전체의 의미를 슬쩍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을 포괄하면서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고 위대한 질서 속으로 들어간다. 그로 인해 거대한 깨달음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그것을 일상의 차원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들어감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기호(記號)를 사용하여 이런 순간들을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로 이런 희망 때문에 예술이 생겨난 것이다.”

이는 곧 예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한다. 대가들의 창조적 작업을 통해 사람들은 사물의 또 다른 측면, 겉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의 아래, 혹은 진짜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예술은 또 다른 존재를 향해 다가가는 신호등, 더 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신호등”이라고 규정한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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