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사라졌다. 일언반구 말도 없이, 한 줄의 메모도 없이. 증발했다는 표현이 더 맞다. 한 남성은 “누가 현관을 두드리는 소리에 애가 살펴보러 나간 뒤 사라졌다”고 말한다. 어느 중년 여성은 “자고 일어나니 남편과 25개월 된 딸이 없어졌다”고 호소한다.
이들의 사정은 절박하다. 하지만 접수를 하는 경찰은 태연하다. 아니 기계적이다. “사람이 없어졌는데 찾아봐야 하지 않느냐”는 애원에 경찰의 대답은 퉁명스럽다. 법적으로 72시간이 지나야 실종신고가 되며 사라졌던 사람들은 대개 2, 3일 뒤 스스로 돌아온다는.
16일 초연한 연극 ‘있.었.다’(작 정복근·연출 서재형)는 표면적으론 실종 문제를 다루지만 극은 간단치 않다. 극이 진행되면서 없어졌다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었는지 의아해지고, 제 발로 돌아온 사람이 사라졌던 사람과 같은 인물인지 헷갈리고, 실종 신고를 하러 온 사람이 갑자기 자기 자신을 찾아달라고 절규한다.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타인과 나의 관계, 나의 존재가 일순간에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이쯤 되면 깨닫게 된다. 실종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타인에 의한 잊혀짐, 자아의 실종, 파편화된 가정의 해체까지 의미한다는 것을. 극의 시작부터 중반까지 “찾아줘, 찾아줘”라고 끈질기게 울부짖는 소녀의 외침은 이런 ‘실종의 시대’를 상징하는 듯하다. 관객에게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찾으라는 주문처럼 들린다.
무대는 단출하다. 10여 개의 문으로 만들어진 무대 배경, 반복되는 기묘한 음악을 통해 혼돈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배우들은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반 박자 쉬는 머뭇거림을 통해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무엇보다 연출의 힘이 두드러진다. 무대 바닥에 수백 개의 증명사진이 투영된 뒤 연기처럼 사라지는 장면만으로도 작품의 메시지가 압축돼 드러났다. 한 가지 더. 할머니와 그 등에 업힌 소녀(할머니의 어릴 적 모습)가 보여 주는 ‘중첩 연기’는 기괴하고, 강렬했고, 소름 끼쳤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i: 1만5000∼2만5000원. 2011년 1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혜화동 게릴라극장. 02-764-7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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