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영 편찬 근대옥편 ‘자전석요’ 하강진 교수, 판본별 분석 논문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30일 03시 00분


국문 → 언문, 我東→ 조선
일제 검열로 계속 수정

《1909년 7월 출판돼 초판 5000부를 반년 만에 팔았다. 그 뒤 1950년까지 스무 번을 거듭 펴냈다. 그사이 두 차례에 걸쳐 단어를 추가하고 그림을 넣어 개정판을 내기도 했다. 구한말 개화사상가 지석영(1855∼1935)이 편찬한 근대자전(字典) ‘자전석요(字典釋要)’다.》

하강진 동서대 영상매스컴학부 영상문학전공 교수가 최근 초판을 포함한 ‘자전석요’ 21판 중 18판의 원본을 비교 대조해 서지 사항과 변천상, 집필 동기를 정리했다. 하 교수는 29일 출간된 학술지 ‘한국문학논총’에 실린 논문 ‘자전석요의 편찬 과정과 판본별 체재 변화’에서 이를 소개했다.

하 교수는 2004년부터 직접 고서점에서 ‘자전석요’를 매입하거나 동국대, 경북대, 전남대, 서울대 등 전국 대학도서관을 뒤져 전체 21판 중 9, 10, 13판을 제외한 모든 판본을 찾아냈다. 이를 통해 최초의 증보판이 1913년 출판된 8판이 아니라 1912년 10월 출판된 7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판권지에 인쇄된 발행일이나 판본 정보가 잘못 표시된 것도 바로잡았다.

일제의 검열로 인한 변화상이 여러 판본에 걸쳐 나타나기도 한다. 초판에 있는 ‘아동(我東·우리나라가 동양에 있다는 뜻으로 조선을 가리킴)’과 ‘국문(國文)’이라는 단어가 1912년 3월에 발간된 6판에서는 ‘조선(朝鮮)’과 ‘언문(諺文)’으로 각각 바뀌었다. 1943년판에는 ‘국문’의 ‘국’에 ‘언’자를 적은 종이를 덧붙여 수정한 흔적도 보인다.

7판에서 증보판을 낸 것도 검열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본문 중 임금이나 왕족의 이름이 나올 경우 공경의 의미에서 이를 네모로 표시하고 본문 첫머리에 따로 설명했다. 그러나 7판부터는 검열 때문에 이를 모두 삭제해야 했다. 남는 빈칸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표제자인 해자(楷字)에 해당하는 전자(篆字)를 수록하는 것이었다.

논문은 이 외에도 당대 문헌을 대조해 지석영이 1892년경 자전 집필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1904년 겨울 1차 완성을 했다는 점 등 집필 과정과 동기도 밝혔다. 하 교수는 “‘자전석요’는 개화기부터 현재까지 국어 낱말 변천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다. 이번에 빠진 판본도 찾아 판본별 본문 내용의 변화를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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