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사람이라면 ‘정성일’이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어떤 영화에 대해 알아들을 듯 말 듯 위태위태한 경계를 오가며 밤이라도 얼마든지 새울 기세로 물 흐르듯 변설을 쏟아내던 괴이한 분위기의 영화평론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리드미컬한 인토네이션과 부드러운 목소리의 기억만은 지금도 생생한 그가,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30일 개봉한 ‘카페 느와르’(18세 이상). 오래전 그 라디오 방송만큼이나 이 영화는 관객을 몽롱한 정신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3시간 18분이라는 무지막지한 상영시간 때문만은 아니다.지난 주말 상영관에는 당연한 듯 잠시 빠져나와 화장실로 향하거나 질렸다는 기색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사람이 적잖았다. 주말 데이트나 한가로운 휴일의 테마로는 결코 권할 수 없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라는 표현양식이 반드시 할리우드의 전유물만은 아니며, 영상과 소리와 텍스트를 조합해 이뤄내는 문화적 소통의 방식이 더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큰맘 먹고 도전해볼 만한 별종이다.
영화는 음악교사인 영수(신하균)가 동료교사 미연(김혜나), 그녀와 동명이인인 학부모 미연(문정희),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선화(정유미)와 차례로 미묘한 관계를 맺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낸다. 줄거리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불륜 이야기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내가 실수투성이 연애경험을 통해 한 뼘 성장한다는 해피엔딩 동화는 더더욱 아니다. 엊저녁 술자리에서 듣는 둥 마는 둥 들었던 주변에 사는 누구누구의 그렇고 그런 사연. 가지런히 정리되지 않은 술잔 너머 사연처럼, 영수가 휘청휘청 걸어가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시종 알맹이 없이 시금털털하다.
첫 장면. 커다란 햄버거 하나를 꾸역꾸역 남김없이 먹어치우고 마는 한 가녀린 소녀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스크린 가득 잡힌다. 아마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한 관객의 혼란스러운 표정과 비슷할 것이다. 문어체 만연체로 가득한 이야기 사이 드문드문 스크린에 끼워 넣은 메모는 쓰인 내용과 다르게 소리 내어 읽혀진다. 눈을 부릅뜨고 보이는 문장과 들리는 소리의 상관관계를 찾다 보면 스르르 잠이 쏟아진다. 체액 대신 먹물을 교환하듯 과잉의 언어를 쏟아내는 남녀의 모습도 보고 앉아있기 썩 편안하지 않다. 정 감독이 공들여 전달하려 한 고갱이가 정말 무엇이었는지 알아챌 관객이 얼마나 될까. 무슨 뜻인지 도무지 모르겠는데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은, 도를 닦듯 진지하고 정성스러운 만듦새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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