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시를 보러 갈 때는 시간을 여유 있게 잡는 게 좋다. 눈발이 난분분하게 흩날리는 겨울 바다, 눈 덮인 겨울 산. 익히 보았던 순백의 자연 풍광인데도 거대한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사진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섬세하고 치밀한 작가의 시선을 담아낸 4∼8m의 대형 화면. 작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 바로 그 순간을 함께하는 듯한 경외감과 울림을 전해준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 전관에서 12일∼2월 27일 열리는 사진가 권부문 씨(56)의 ‘산수와 낙산’전. 본관에는 설악, 홍천, 평창 등 강원도 산야를 촬영한 ‘산수’ 시리즈 작품 12점, 신관에는 낙산 해변의 겨울을 담은 ‘낙산’ 시리즈 22점이 걸린다. 자신이 본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의 본연적 기능에 충실한 작업을 선보이는 전시다.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보다 내 앞에 다가온 이미지를 섬긴다는 자세로 작업하는 작가는 말한다.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보는 자의 마음 상태와 해석력에 따라서 드러나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이 지나치는 것에 한 발 다가서서 작가의 눈으로 해석하고 명징한 힘을 부여한 그의 사진엔 독특한 미감과 마법이 살아 숨쉰다. 전통 산수라는 장르를 답습한 것이 아니라, 현대적 사진기술을 바탕으로 산수의 ‘정신’을 환기하고 ‘이미지를 대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선인들이 산수를 통해 와유(臥遊)하듯 오늘의 관객은 내 앞에 활짝 열린 이미지 사이를 자유롭게 소요하면서 화면 속으로 스며드는 체험을 하게 된다. 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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