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가격 비싸도··· 몇 주를 기다려도 좋다··· 왜, 나만의 옷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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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수제 맞춤 정장은 고객의 몸 각 부위에 꼭 들어맞는 재단으로 최대한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기계 재봉에 비해 손 바느질의 느낌이 더 편하다는 것이 패션업체들의 설명이다. 캠브리지멤버스 강남 매장에서 모델이 가봉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수제 맞춤 정장은 고객의 몸 각 부위에 꼭 들어맞는 재단으로 최대한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기계 재봉에 비해 손 바느질의 느낌이 더 편하다는 것이 패션업체들의 설명이다. 캠브리지멤버스 강남 매장에서 모델이 가봉 과정을 시연해 보이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갤러리아백화점도 지난달 본점에 ‘g.street 494 homme’ 라는 남성 정장 편집 숍을 오픈하면서 양복점 장미라사를 ‘숍 인 숍’ 형태로 들였다. 물론 여전히 ‘소공동’으로 대표되는 많은 양복점이 고가의 수제 정장을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맞춤 구두도 각광받고 있다. 금강제화는 지난해 말 신세계 강남점에 ‘헤리티지’ 구두 편집 매장을 열고 비스포크 서비스를 강화했다. ‘헤리티지 세븐’과 ‘헤리티지 블랙’ 등 이 회사의 맞춤 수제화 라인과 해외 명품 수제화를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 본점에 이어 백화점으로는 두 번째다. 이 회사는 직영점에서도 비스포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영업8팀 이상헌 과장은 “최근 남성 패션의 변화는 남성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면서 시작된 것”이라며 “비스포크 서비스는 브랜드와 가격에 상관없이 본인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가 높아졌다고 해도 수제 정장은 여전히 ‘비싼 물건’이다.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양복점이라면 정장 한 벌에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이 보통이다. 1000만 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공정도 까다롭지만 원단도 그에 걸맞은 고급 제품을 쓰기 때문이다.

장미라사를 비롯해 청담동의 세기테일러와 논현동의 체스타필드 양복점, 삼성동의 제니스 양복점 등이 업계에서 잘 알려진 고급 수제 양복점들이다. 란스미어의 수제 맞춤 정장은 230만 원에서 500만 원짜리가 많이 팔린다. 원단에 따라 3000만 원 이상이 되기도 한다. 캠브리지멤버스의 비스포크 핸드메이드 라인도 350만 원에서 490만 원까지 가격이 책정돼 있다.

대기업 총수들이 많이 찾는다는 키톤, 브리오니, 스테파노리치 같은 해외 브랜드는 평균 가격이 더 비싸다. 모든 공정은 이탈리아에서 이뤄진다. 맞춤 정장이라면 1000만 원 이상이다.

이런 비싼 가격 때문에 수제 양복은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CEO), 전문직 중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층에서도 수제 정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일모직의 정장 편집숍인 란스미어의 김효진 선임은 “수제 정장에 관심을 갖는 30대 사업가나 전문직 직장인 단골 고객이 많다”며 “그들은 녹색 계열 정장 등 과감한 스타일을 시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한 달에 1000만 원 이상씩을 옷에 투자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 김 선임의 귀띔이다.

수제 맞춤 구두는 벨루티, 존 롭 등 고가의 해외 브랜드들의 명성이 높다. 국내 업체인 금강제화도 헤리티지라는 브랜드로 수제 맞춤 구두를 제작하고 있다. 수요층이 중장년층에서 젊은층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금강제화의 설명이다. 사진 제공 벨루티 금강제화
수제 맞춤 구두는 벨루티, 존 롭 등 고가의 해외 브랜드들의 명성이 높다. 국내 업체인 금강제화도 헤리티지라는 브랜드로 수제 맞춤 구두를 제작하고 있다. 수요층이 중장년층에서 젊은층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금강제화의 설명이다. 사진 제공 벨루티 금강제화
#3비스포크 핸드메이드 정장은 무엇보다도 ‘편안함’이 장점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자신의 몸에 꼭 맞는,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이 넘치는 제품을 소유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객들은 비싼 값을 치르면서 몇 주를 꼬박 기다린다.

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인 제일모직 남훈 팀장은 “남성 정장은 어깨가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이 어깨에서 스타일과 편안함의 차이가 느껴진다”며 “손으로 작업한 어깨 부분은 기계 작업보다 바느질 사이의 공간이 더 많기 때문에 움직일 때 더 편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복의 가격 차이는 원단과 어깨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30년 이상의 수제 양복 제작 경력을 가졌다는 캠브리지멤버스의 배덕환 주임도 “고객 치수에 꼭 맞게 어깨 부분의 입체감을 내는 작업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 놓았다. 저마다 다른 소비자의 어깨 모양에 맞춰 바느질을 해나가는 작업이 보기에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한쪽 어깨를 만드는 데만 400땀 이상의 바느질이 필요하다.

편안한 어깨와 꼭 맞는 정장은 입었을 때 스타일까지 살려낸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개성. 주요 브랜드들은 기본적으로 100가지 이상의 원단을 확보해놓고 있다. 대부분 영국에서 수입한 최고급 울 원단이다. 란스미어 관계자는 “기본적인 100여 종의 아이템 이외에도 샘플을 보고 고객이 주문할 수 있는 원단은 3000가지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런 ‘편안함’과 ‘개성’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힘이다.

#4남성 패션의 완성은 구두.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비스포크 수제화 서비스로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이미 국내에도 에드워드 그린, 테스토니, 조지 클레베리, 브루노 말리 등 다양한 가격대의 해외 명품 수제 구두 브랜드들이 소개돼 있지만 여건상 국내에서 비스포크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그래도 몇 몇 브랜드는 국내에서 수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구두 브랜드 존 롭은 1년에 3차례 프랑스 본사 장인(匠人)이 매년 3월과 7월, 11월 한국을 방문해 맞춤 서비스를 하고 있다. 1970년대 프랑스 에르메스 그룹에 인수된 존 롭은 영국과 프랑스에 공장을 두고 있는데 맞춤화는 주로 프랑스에서 제작된다. 주문 뒤 9개월이 지나야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 900만 원에서 2200만 원까지 하는 가격 때문에 국내에서는 1년에 7켤레 정도만 팔린다. 존 롭 관계자는 “맞춤부터 ‘라스트(나무 신발 틀)’ 제작, 항공료 등 모든 비용이 포함된 가격”이라고 말했다.

벨루티 역시 5∼6개월에 한 차례씩 장인이 한국을 방문해 비스포크 서비스를 제공한다. 베네치아의 바닷물과 모래, 갯벌과 알프스의 눈으로 가죽을 가공하는 ‘베네치아 가죽’으로 유명해진 명품 브랜드다. 기성품 가격이 200만 원 가량인 데 비해 비스포크 제품은 500만 원에서 1550만 원 선이다. 공정 기간은 약 10개월에서 1년이다.

금강제화의 헤리티지 세븐과 블랙은 이들 명품 브랜드의 ‘틈새’를 노린 비스포크 수제화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1개월 정도면 자신만의 구두를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명품 브랜드에 비해 값이 싸다고는 해도 헤리티지 세븐의 가격은 137만 원 정도로 만만치 않다. 이 가운데 99만 원이 라스트(구두제작용 틀) 제작 등 ‘맞춤’에 들어가는 가격이고 나머지가 신발 가격이다. 맞춤 서비스를 받은 고객의 라스트는 금강제화에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구입부터는 신발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

#5패션업계는 이런 수제 맞춤 서비스의 전망을 밝게 보고 있다. 경제력을 갖춘 중년의 남성들이 ‘멋’에 눈을 돌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남훈 팀장은 “경제 수준이 올라갈수록 맞춤 정장의 비중이 늘어난다”며 “유럽 선진국은 맞춤복과 기성복 남성 정장의 비율은 15 대 85 정도”라고 말했다. 남 팀장에 따르면 한국은 아직 맞춤 정장과 기성 정장의 비율은 3 대 97 정도다. 그는 “일반적인 양복점들은 아무래도 개인 사업이다 보니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기업이 진출해 수제 맞춤 정장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것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억 원어치를 팔았던 캠브리지멤버스의 비스포크 핸드메이드 라인은 올해 매출 목표를 13억 원으로 잡았다. 란스미어도 올해 수제 정장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20% 가량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제 구두 역시 고객층이 기존 40, 50대에서 20, 30대로 낮아지면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금강제화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회사 마케팅실 김동화 과장은 “2007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맞춤 수제화 매출이 매년 20∼30%가량 늘고 있다”며 “올해 12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이 영향인지 다른 브랜드 들도 맞춤 수제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코오롱 최경복 실장은 “장기적으로는 핸드메이드 패션이 패션 기업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황태현 인턴기자 고려대 사회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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