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험을 했다. 한 여성이 임신에서 출산까지 겪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답을 하게 했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은 180도 달랐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지만 남학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전혀 새로운 게 없다”며 따분해하는 반응 일색이었다. 왜 이렇게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바보의 벽(バカの壁)’의 저자 요로 다케시(養老孟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미리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바보 같은 벽’ 때문”이라고. 남자는 출산에 대해 공감하고 싶은 의지가 없기에 여자처럼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고, 발견하려는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초샤(新潮社)가 2003년 4월 펴낸 ‘바보의 벽’은 일본 출판계에선 보기 드물게 대히트를 기록한 스테디·베스트셀러다. 지난해 7월 100쇄를 찍어내 발행부수가 432만 부를 넘었다. 일본 출판계에서 100쇄를 넘은 책은 1940, 50년대 간행된 문학작품 문고본이 전부다. 100쇄까지 가는 데 반세기가 걸렸지만 바보의 벽은 7년여 만에 100쇄를 돌파했다.
도쿄대 의대에서 해부학을 전공한 저자는 현대사회 불통(不通)의 문제를 인간의 뇌에서 찾고 있다. 그렇다고 뇌를 해부한 것은 아니다. 뇌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방해하는 인간의 태도에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학자가 쓴 철학책에 가깝다.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느 정도 이상 생각하기를 단념하고 사고를 정지해 버린다. 스스로 만든 벽이다. 사고 정지는 상대에 대해 귀를 닫게 만든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설명해도 이해시킬 수 없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쉽게 믿어버리고 이면에 존재하는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으며 진실에 다가서려고도 하지 않는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세상과 사물을 ‘움켜쥐고 만져볼 수 없는 애매함’이라고 규정한다. 명쾌하지 않고 애매한 세상의 속성 탓에 같은 사건이나 사물을 접했을 때 반응이 제각각인 것은 피할 수 없는 일.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신의 인식과 판단이 항상 옳다고 오해한다. 그리고 자신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으며 알려고 하면 모두 알 수 있다고 자만한다. 자신의 판단이나 생각이 틀릴 수 있다고 회의를 품는 법이 없다.
오해와 자만에 빠진 인간이 스스로 쳐놓은 높은 벽에 갇혀 바깥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점을 저자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의사소통의 단절이 개인에서 사회, 국가로 퍼지면서 집단적 의사불통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불화, 전쟁과 테러, 리먼 쇼크와 같은 금융위기는 모두 이 같은 집단적 불통이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인터넷과 트위터로 간단히 연결되는 시대에 오히려 소통이 부재하고 있다는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일본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젊은 세대에 권하고 싶은 책으로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바로 그 대답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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