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쟁 영원한 표석, 신흥무관학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 설립 100돌 국내외 기념행사

무장독립투쟁의 산실인 만주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그 역할과 의미를 새기는 학계와 민간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지역 추가가 마을에서 신흥강습소로 출발했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준비위원회는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회의실에서 창립대회를 연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과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를 포함해 6명이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김진현 신간회기념사업회장, 오명 전 건국대 총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를 포함해 3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기념사업회는 신흥무관학교 개교일인 6월 10일에 맞춰 육군사관학교나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광장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5월에는 ‘국군의 연원으로서의 신흥무관학교’를 주제로 서울에서 학술대회를 연다.

6월 중에는 중고교생들이 신흥무관학교의 활동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교육과학기술부와 협의해 특별계기 수업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누리집(www.sh100th.org)을 다음 달에 개설하고, 독립운동 후손 및 역사교사들과 함께 신흥무관학교 터를 답사한다. 4월에는 중국 조선족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글짓기 대회도 연다.

만주와 러시아, 중국 내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농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만주와 러시아, 중국 내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농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우당이회영선생기념사업회
신민회의 본산인 상동교회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 예배를 개최할 계획이다. 신흥무관학교는 이회영 등 신민회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주축이 돼 설립했다.

독립기념관은 4월 신흥무관학교 체험전을 개최하고 6월 중 중국 랴오닝(遼寧) 성 사회과학원 등과 공동으로 선양(瀋陽)에서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김주용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과 국제학술대회를 공동 개최함으로써 신흥무관학교에 대한 중국 학계의 관심을 높일 계획”이라며 “올해는 중국 지방정부의 허가를 얻어 신흥무관학교 터에 표지석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은 보훈처와 공동으로 올 7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를 통해 신흥무관학교에 관한 정밀 자료 조사를 벌인다. 신흥무관학교 부속건물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는 것이 학계의 과제다.

신흥무관학교는 애국지사들의 비밀결사인 신민회가 1909년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키로 한 결정에 따라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 등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만주로 가서 세웠다. 일제와 지역민들의 눈을 피해 ‘강습소’로 출발한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까지 10년간 수천 명의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며 만주와 러시아, 중국 내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이 됐다.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과 청산리·봉오동 대첩의 주축이기도 했다. 조선혁명군, 의열단, 한국독립군, 한국광복군 등의 핵심 인력도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미리 배포한 27일 창립대회 기조강연문에서 “신흥무관학교는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긴 그날부터 한시도 국권 회복을 게을리하지 않고 광복에 매진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의 증인이며 우리 노력과 힘으로 국권을 되찾겠다는 강인한 자주독립정신의 영원한 기념비”라고 평가했다.

만주지역 독립운동 유적지 조사를 벌인 바 있는 박환 수원대 교수(사학과)는 “신흥무관학교를 포함해 1910년대 무장독립운동에 관한 자료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며 “올해는 중국 현지 문서 조사를 통해 역사의 공백을 메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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