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어둡고 가팔랐다. 객석을 향해 삼각형 형태로 내려다보는 바닥은 11도 각도의 경사를 이뤘다. 발레전용 무대의 경사도가 7도임을 감안하면 지독한 급경사다. 게다가 무대 왼쪽으론 10m 가까운 높이의 절벽이 설치됐다.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 역할을 맡은 5명의 배우는 그 절벽에 들쑥날쑥 박힌 철봉 30여 개에 매달려 거미인간 같은 연기를 펼쳤다. 그렇게 기울어진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휘청거리고 버둥거리는 배우가 곧 우리네 모습 아닐까. 그렇다. 연극은 인간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자”에서 “가장 욕된 자”로 추락하는 그리스 영웅시대의 오이디푸스를 민주시대의 보통사람으로 형상화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영웅
을 동양적으로 풀어낸 재
단법인 국립극단의 창단
공연 ‘오이디푸스’. 코러
스 중 한 명으로 출연한 무
대미술가 이영란 씨(오른
쪽)가 오이디푸스(가운데
이상직 씨)가 생부를 살해
했던 세 갈래 길을 ‘사람
인(人)’자로 형상화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국립극단
2500년 전 쓰인 소포클레스의 원작을 각색한 김민정 작가는 이를 위해 아침엔 네 발, 점심엔 두 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짐승의 정체를 묻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변용한 수수께끼를 새로 주조한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박정자)가 자신의 동굴을 찾아온 오이디푸스(이상직)에게 내는 수수께끼다. “아침에는 아비를 먹고, 점심에는 어미를 먹고, 저녁에는 제 두 눈을 파먹고 헤매는 짐승은?”
우리는 두 개의 수수께끼의 답을 모두 알고 있다. 첫 번째의 답은 인간이고 두 번째의 답은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하지만 첫 번째 수수께끼를 풀어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칭호를 얻은 오이디푸스가 두 번째 수수께끼 앞에선 ‘눈 뜬 장님’ 신세다. 보편적 인간 조건을 꿰뚫는 혜안을 자랑하던 오이디푸스가 정작 자신의 운명은 모른다.
소포클레스의 연극은 이를 파고든다. 눈먼 테이레시아스가 아는 것을 눈 뜬 오이디푸스가 모른다는 아이러니. 국립극단 상임연출가 한태숙 씨는 여기서 봄과 앎보다 못 봄과 모름에 방점을 찍는다. 우리는 누구나 한 치 앞의 운명을 모르는 존재, 그래서 운명의 여신 앞에 무력하고 가련한 존재다. 따라서 두 개의 수수께끼는 보편과 특수의 대립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존재로서 인간의 보편적 울림을 배가하는 효과를 낳는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비 라이우스 왕을 죽인 세 갈래 길의 이야기가 나올 때 이영란 씨가 무대 바닥에 ‘사람 인(人)’자 형상으로 세 갈래 길을 형상화하는 데서 더욱 뚜렷해진다. 오이디푸스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난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무지의 죄(하르마티아)’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존재다.
서양예술사에서 오이디푸스가 헬레니즘을 대표하는 소크라테스(“너 자신을 알라”)와 헤브라이즘을 상징하는 예수(“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을 돌로 치라”)가 만나는 십자로에 위치하는 이유다. 프로이트와 라캉, 가타리와 들뢰즈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우리네 삶에 그 보편성을 각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태숙 연극은 이 지점에서 신이 정해놓은 가혹한 운명마저 자기 책임으로 껴안고 신에게 맞서는 영웅으로 오이디푸스를 그리는 서양연극의 전통에서 벗어난다. 오이디푸스는 우리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잔혹함에 진저리를 치고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인생에 염증을 내고 결국 키타이론산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인생무상과 권력무상의 짙은 허무감이 배어 있는 동양적 해석이다.
그러나 연극에는 한국의 현실을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다. 다른 공연 같으면 주연급으로 활약할 배우들이 절벽에 매달린 민중을 대표한 코러스로 출연해 연극의 내용을 한국 현실에 투영하는 코멘트를 쏟아낸다. 거기엔 구제역으로 수백 마리의 짐승이 살육되는 참담한 현실과 최고 권력자만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중우(衆愚)정치의 폐해에 대한 질타가 담겼다.
무엇보다도 절벽에서 뛰어내린 오이디푸스의 형상에서 권력의 최정점에서 추락하면서 자살을 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이 작품이 국립극단 레퍼토리로 해외에 진출할 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할 부분이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크레온(정동환) 테이레시아스(박정자) 요카스타(서이숙)와 삼합(三合)의 대결로 압축해낸 팽팽한 연기대결 못지않게 그를 입체화시킨 무대연출이 뛰어났다. 거문고와 북을 활용한 원일 씨의 원초적 음악, 대형 분필덩어리로 무대 안에 아날로그적 영상을 채워가는 이영란 씨의 미술 퍼포먼스, 안무가 이경은 씨의 역동적 무용, 그리고 테이레시아스가 키우는 반인반수의 새(이기돈)가 빚어내는 섬뜩한 이질감은 종합예술로서 연극의 ‘미친 존재감’을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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