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公共)이라고 하면 국가나 정부가 주체가 되어 실현해야 하는 어떤 것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전통적인 공사(公私)이원론이 아닌 제3의 ‘민(사람들)에 의한 공공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이를 고찰하는 공공철학을 소개한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도쿄대 지바대 와세다대 등에 공공철학 과목이 신설됐고, 공공철학을 주제로 한 연구자들의 담론집이 출간되는 등 일본 내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 집필 배경이다.
공공철학은 단순히 시장 원리에 따라 공익이 지켜진다는 생각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공공적인 규칙과 공공정책 등이 먼저 존재해야 공익의 실현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독과점, 식품 안전, 환경 문제 등 모든 사회 이슈에서 공공성은 주요 쟁점이 되고 있다. 저자는 현재의 분과적인 학문체계로는 이 다양한 공공성을 다룰 수 없는 점에 공공철학의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과학은 19세기 ‘도덕철학’의 우산 아래에서 벗어나 전문화의 길을 걸으면서 자기 이익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인간 행동이 주요 연구대상이 되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경제학 역시 독점금지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등 공공적 규칙에 맞춰진 시장경제의 실체를 경시하고 자유와 시장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성의 철학적인 의미를 짚기 위해 저자는 사상가 해나 아렌트(1906∼1975)의 공공성론을 도입한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공공적인 것’에 대해 ‘만인이 볼 수 있고 만인에게 개방되어 가능한 한 가장 널리 공시(公示)되고 있는 현상’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라고 정의했다.
이 책은 공공철학이 기본 원리와 가치로 삼는 정의, 인권, 복지, 커뮤니케이션, 복지 등의 의미와 역사도 자세하게 풀어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선한 사회로서의 공공 세계’의 근본 규범으로 여겼고, 19세기 이후 출현한 마르크스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개인의 자유권에 대한 철학적 사고 없이 사람들 사이의 소득과 재산의 평등한 분배에 초점을 맞춰 정의를 이해했다는 것이다.
공공철학은 스스로 이념과 현실의 통합을 지향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사회 현상(존재)의 사실적인 분석, 바람직한(당위) 사회 이념상의 추구, 그 이상의 실현 가능성(가능)의 탐색이라는 단계를 거쳐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단순히 현상 분석만으로 사회 연구를 해결하는 실증주의적 현실주의가 아니며 이상을 현실에 투영해 현실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비판주의나 관념론적인 이상주의와도 구별되는 ‘현실주의적 이상주의’”라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공공철학의 모습을 ‘글로컬 공공철학’으로 명명했다. 자기 지역의 문화적 역사적 다양성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평화, 정의, 인권, 복지, 빈곤, 과학기술, 환경, 안전보장, 문화재 보호 등 지구 규모에서 대처할 필요가 있는 문제를 더불어 생각하는 공공철학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