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하’ 제9장에서 맹자는 어진 이를 등용하여 그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게 하여야 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하고자 먼저 도목수와 큰 나무의 비유를 들고, 다시 옥공과 옥의 비유를 들었다.
今有璞玉於此는 가설의 말이다. 璞(박)은 옥을 포함하고 있는 돌을 말한다. 鎰은 20兩의 무게로 萬鎰(만일)이라고 하면 高價(고가)임을 뜻한다. 彫琢(조탁)은 彫刻(조각)하고 琢磨(탁마)함이다. 至於∼는 ‘∼의 경우에는’이라는 뜻이다. 曰 이하 從我까지는 왕(제후)의 말을 가설한 것으로, 앞의 호에 나왔다. 舍는 버릴 捨(사), 女는 이인칭의 汝와 같다. 從我는 왕(제후) 자신이 추구하는 覇道(패도)를 따르라는 뜻이다. 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우선 옥 전문가인 옥공에게 옥의 조탁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옥공에게 옥을 조탁하게 시키는 것과 어째서 다르게 하느냐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앞의 풀이를 따랐다.
송나라 학자 范祖禹(범조우)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賢者(현자)들은 늘 군주가 자신의 배운 바를 행하지 못할까 걱정했으나 세상의 庸劣(용렬)한 군주들은 늘 현자가 자신의 좋아하는 바를 따르지 못할까 걱정했다.
현명한 군주와 어진 신하가 만나는 것을 明亮際遇(명량제우)라 한다. 정치의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든 윗사람이 私心(사심)을 앞세운다면 際遇(제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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