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밥은 영양 만점에 밥맛도 좋다. 반면 우리말 이미지로는 최악이다. “콩밥 먹는다”고 하면 감옥에 간다는 말이니 콩밥은 감옥과 동의어처럼 쓰인다.
동양에서 콩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뿌리가 무척 깊다.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 북부의 만주지방이고 또 콩이 그만큼 흔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원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콩밥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한(漢)나라 역사가 반고가 쓴 한서(漢書)의 진승열전 얘기는 이렇다.
천하를 놓고 유방과 다투던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진을 쳤는데 마침 날씨가 춥고 큰비가 내려서 병사들이 얼어 죽고 또 배고픔에 시달렸다. 양식이 떨어져 식사를 할 때 콩(菽)을 절반가량 섞어 먹는다는 보고를 받은 항우는 철군을 결정한다. 콩밥을 먹는 것 자체가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려 전투를 하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도 콩밥은 형편없는 음식으로 나온다. 전국시대 당시 한나라의 지형을 설명하면서 지리가 험해서 사람들이 보리와 밀도 재배를 못해 주로 콩밥을 먹고 콩잎으로 국을 끓여 먹는다고 했다. 한자로 콩밥과 콩잎국을 두반곽갱(豆飯藿羹)이라고 하는데 보통 청빈한 생활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로 쓰이지만 본뜻은 변변치 못한 음식이다.
콩밥이 감옥을 상징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교도소에서 재소자에게 콩밥을 먹였기 때문이다. 1921년 동아일보에 콩밥이라도 먹게 해달라며 감옥으로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절도범 기사가 보인다. 1928년에는 남편은 징역을 살며 콩밥을 먹는데 자신은 밖에서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다며 콩밥만 먹고 지내는 부인 이야기도 실려 있다.
그렇다면 감옥에서는 왜 콩밥을 먹였을까. 콩이 값도 싸고 영양도 풍부해 재소자의 건강을 고려한 식사였다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옛날에, 그것도 일제강점기의 감옥에 그렇게 휴머니즘이 넘쳐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옥에서 콩밥을 먹인 것은 당시에도 콩밥이 정말로 형편없는 식사였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콩밥이 어떤 음식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려 있다. ‘콩밥’이라는 제목의 동시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밤낮 우리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콩밥만 짓지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 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못 먹겠니?” 하고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해마다 쌀농사는 짓는데 밤낮 왜 우리는 콩밥만 먹을까?’
콩밥이라면 넌더리를 내는 아이의 심정과 당시 사람들이 콩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분명하게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우리나라 재소자 식사 규정은 1957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때만 해도 콩밥을 먹였다. 규정에는 쌀 30%, 보리 50%, 콩 20%의 잡곡밥을 주도록 돼 있었다. 콩밥이 사라진 것은 1986년이다. 이때부터는 쌀과 보리만 섞은 보리밥을 주었다. 지금도 콩밥과 감옥을 함께 떠올리는 것을 보면 감옥의 콩밥이 사람들에게 어지간히 인상이 깊었던 모양이다.
콩밥을 거부감 없이 몸에 좋은 잡곡밥으로 여기에 된 것은 콩 값이 비싸진 근래의 일이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경찰 유치장에서 쌀밥을 맛있게 먹었다는 기사를 보고 느낀 격세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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