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스페이스 스튜디오의 자체 심사를 통과한 예술가라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스페이스 본부 건물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움베르토 조반니 씨도 이탈리아 출신의 판화가였다. 그는 “이탈리아와는 다른 런던의 풍광과 밤거리 모습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고 있다”며 “런던 생활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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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를 차별 없이 지원하는 것은 기업도 비슷하다.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의 쇼윈도에는 요즘 명품 브랜드 대신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이 백화점이 선정한 ‘유망한 젊은이(Bright Young Things)’에 포함된 작가들의 작품이다.
런던에서 유학하고 지난해 현지에서 데뷔한 한국 패션 디자이너 이영리 씨도 그들 가운데 하나다. 이 백화점은 매년 런던에서 활동하는 젊은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같은 예술가 가운데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작가들을 선정해 선뜻 쇼윈도를 내준다. 일종의 ‘아트 마케팅’이지만 백화점 측에서 전시에 관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쇼윈도를 통해 이름을 알릴 기회를 준다. 그들의 브랜드를 백화점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이영리 디자이너는 “디스플레이 일정을 e메일로 주고받았을 뿐 백화점 쇼윈도를 꾸미는 작업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었다”며 “그들이 어떻게 나를 믿고 디스플레이를 맡겼는지 나 자신도 의아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런던의 명소인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5월까지 중국 설치 미술가 아이웨이웨이의 해바라기씨를 전시한다. 일일이 손으로 색칠해 구운 도자기 해바라기씨 1억 개를 갤러리에 깔아 장관을 연출했다. 중국 도자기 장인 1600명이 2년 동안 작업한 이 작품은 유니레버의 후원을 받았다. 유니레버는 ‘유니레버 시리즈’를 통해 2000년부터 작가들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후원하고 있다.
루이뷔통은 사우스 런던 갤러리 등 런던의 5개 미술관과 손잡고 ‘영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예술 교육을 목적으로 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런던의 청소년들은 예술을 배우고 스스로 작품을 만들어본다. 현역 작가와 함께 작품을 만들 기회도 있다. 사우스 런던 갤러리의 프로젝트 담당자인 사라 코필스 씨는 “루이뷔통은 금전적 지원을 할 뿐 아니라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한다”고 소개했다. 청소년들과 현역 작가가 함께 만든 작품은 런던의 루이뷔통 매장에 전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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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각계의 문화 지원 현장은 박사 과정을 밟느라 영국에 머물고 있는 임근혜 큐레이터와 동행했다. 영국에서 유학한 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큐레이터를 지낸 그는 영국 현대미술을 소개한 책 ‘창조의 제국(2009)’을 펴낸 영국 미술 전문가다. 임 큐레이터는 “경제적 효용보다는 예술 자체를 먼저 생각하는 기업과 단체들이 많은 런던은 진정한 ‘예술 마케팅’이 이뤄지는 도시”라고 말했다.
그와 함께 최근 리뉴얼 한 이스트엔드 지역의 화이트채플갤러리를 방문했다. 현대미술 전시로 명성을 얻은 곳이다. 임 큐레이터는 “19세기 이스트엔드 지역은 ‘잭 더 리퍼’가 연쇄살인을 벌인 우범 지대였다”며 “1910년 영국 정부가 이 지역에 화이틀채플갤러리를 세운 것은 강압적인 지역 정화보다 문화적 계도를 통한 지역 정화를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을 바라보는 영국인의 시각을 잘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화이트채플갤러리가 들어선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스트엔드의 브릭레인은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인 ‘팬시한 거리’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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