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 포 세일(Beatles for Sale)=영국 리버풀 출신 밴드 비틀스의 1964년 발매 음반. 많은 다른 비틀스의 앨범들처럼 재킷에 멤버의 얼굴이 크게 부각돼 있다. 1962년 싱글 ‘러브 미 두’로 런던에 진출한 비틀스는 이후 ‘플리즈 플리즈 미’ ‘하드 데이 나잇’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슈퍼스타가 됐다.
▽캠든 마켓=런던 북부의 재래시장. 영국의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시장이다. ‘펑키’ 분위기의 캠든 마켓에서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문구를 새긴 티셔츠, 자잘하지만 아기자기한 장신구 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여전히 옛 레코드판(LP판)을 판매하는 가게가 곳곳에 있다.
▽히 파이브(He 5)=1960년대 말 활동한 한국 록 밴드. ‘애드 훠(Add 4)’와 ‘키보이스’에서 출발한 한국 초기 록 밴드는 히 파이브를 거쳐 ‘히 식스’ ‘트리퍼스’ ‘템페스트’ 등으로 이어지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김치스’ ‘바보스’ ‘라스트찬스’ ‘피닉스’ 등이 1960, 70년대 활동하던 밴드다. 이기일 씨가 총괄 기획한 2009년의 ‘괴짜들 군웅할거, 한국 그룹사운드 1960∼1980’ 전시의 포스터에 히파이브의 사진이 실렸다.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이들 세 ‘항목’은 런던의 한 스튜디오에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을 엮은 매개는, 역시 약간은 엉뚱하게도, LG패션의 캐주얼 브랜드 헤지스다.
‘개념 미술(Conceptual Art)’ 작가인 이기일 씨는 ‘헤지스 런던 아트 프로젝트’의 첫 초청 작가로 선정돼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4개월 동안 런던에 머물며 로큰롤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에 열중했다. 헤지스 런던 아트 프로젝트는 LG패션 헤지스가 런던에 한국 작가들을 위한 스튜디오와 숙소를 제공하고, 초청 작가들은 런던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에 반영하는 프로젝트다. 한국 작가들과의 협업 성과는 3월 출시 예정인 헤지스 제품에도 적용된다.
지난달 25일 방문한 이기일 작가의 런던 스튜디오는 캠든 마켓에서 걸어서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알링턴 하우스에 있었다. 개념 미술이란 완성된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나 아이디어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바라보려는 예술 사조다. 이기일 작가의 작품에도 준비 과정이 포함돼 있다.
이 작가의 작업실 한쪽 벽면에는 ‘비틀스 포 세일’을 비롯한 베이비스, 보니엠, 오크릿지 보이스 등의 앨범 재킷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이 작가는 “4인조 밴드, 그리고 앨범 재킷에 밴드 멤버들의 얼굴이 크게 나온 앨범만을 구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앨범들은 캠든 마켓의 LP가게에서 구한 것이다.
그는 내년 열리는 리버풀 비엔날레에서 ‘원조 한국 밴드’ 멤버의 리버풀 공연과 한국 록밴드 역사에 관한 전시를 추진하고 있다. 이기일 작가는 “비틀스와 같은 시대에 ‘변방’인 한국에서도 비틀스를 닮은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틀스의 고향에 알리고 싶다”고 전시 취지를 설명했다. 옛 로큰롤 앨범을 찾아 모으고 한국의 옛 밴드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을 문서와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예술 작업이다.
이 작가는 이 작업과 함께 영국 로큰롤을 주제로 한 헤지스 패션 디자인 작업도 병행했다. 곧 선보일 헤지스 봄 신상품에 ‘헤지스, 브릿팝(영국의 모던록)을 입다’라는 주제로 이 작가의 작업성과가 반영된다. 그는 비틀스 음악의 주파수 그래픽으로 독특한 패턴을 만들거나, 음반 모양을 모티브로 한 티셔츠를 디자인하는 등의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LG패션으로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가 지원’과 ‘아트 마케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고 있는 셈이다. 케임브리지대의 요트 클럽인 ‘헤지스 클럽’에서 이름을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헤지스는 ‘정통 영국 스타일’을 표방하는 브랜드다. 작품에 영국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높이겠다는 시도다. 이기일 작가에 이어 김아영 작가가 이달 말 런던으로 출발해 ‘영국 스토리’를 주제로 한 작업을 시작한다.
스튜디오를 지원하는 스페이스 스튜디오 측도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 스페이스 스튜디오 관계자는 “사기업이 지원하는 예술가를 위해 스튜디오를 제공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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