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판은 줄어도 웃음은 커졌다… 두 좀도둑의 별 볼일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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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연극 ‘늘근도둑이야기’
대본★★★★ 연기★★★★ 연출★★★☆

‘늘근도둑이야기’의 속 좁고 한심하고 순진하면서 어수룩한 두 도둑은 열심히 살지만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삶을 사는 소시민의 모습과 닮았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늘근도둑이야기’의 속 좁고 한심하고 순진하면서 어수룩한 두 도둑은 열심히 살지만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삶을 사는 소시민의 모습과 닮았다. 사진 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1989년 초연 이후 여섯 번째로 다시 무대에 오른 늘근도둑이야기(이상우 작·민복기 연출)는 왜 이 연극이 오래 사랑받는지를 잘 보여준다. 극은 시작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 속 정체불명의 소리로 궁금증을 유발한 뒤 정보를 조금씩 흘려주면서 관객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절도 전과 18범인 ‘더 늙은 도둑’(김승욱)과 사기 전과 12범인 ‘덜 늙은 도둑’(오용)은 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 미술품으로 가득 찬 공간에 ‘한탕’하려고 잠입한다. 하지만 금고를 앞에 두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잡혀 수사관(이희준)의 조사를 받는다.

관객은 곧 이들이 도둑질을 포함해 인생에서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는 한심한 인물임을 짐작하지만 ‘큰 도둑들’이 주름잡는 세상에서 오히려 우리와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문성근(1989년 수사관) 명계남(1996년 더 늙은 도둑) 유오성(1996년 수사관) 씨 등이 출연했던 초기 무대는 웃음 속에 ‘그분’에 대한 날 선 사회풍자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선 연평도 포격과 구제역 등 사회적 현안은 잽으로 툭툭 날리면서 휴먼코미디에 초점을 맞췄다. 작자 이상우는 “더 따뜻하게, 더 재미있게, 더 사람 냄새 나게 작품을 고쳤다”고 말했다.

그런 탓일까. 더 늙은 도둑이 역대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을 거명하며 ‘유명한 분들은 다 별을 달았다’고 상기시키는 부분보다 덜 늙은 도둑이 젊은 시절 실패한 사랑을 회상하며 주억거리는 대사가 더 가슴에 꽂힌다. “그래도 사나이 일생에 불같은 사랑 한번 해봤으니 후회는 없소. 다 꿈이우, 난 산다는 게 꿈이라면 좋겠소.”

별다른 무대 장치 없이 1시간 40여 분 동안 끌어가는 것은 연기의 힘이다. 특히 두 도둑이 수사관의 신문을 받을 때 자신들의 정체를 감추려고 번갈아 말꼬투리를 붙잡고 횡설수설하는 장면은 ‘언어 곡예’에 가까웠다. 수사관과 취객으로 1인 2역을 펼친 이희준 씨의 술 취한 연기는 이 부문 상을 만들어 주고 싶을 정도로 실감났다.

전체적으로 어떤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보여줌으로써 연극은 오히려 생생한 리얼리티를 얻는다. 웃음의 순도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이대연(더 늙은 도둑) 김뢰하(덜늙은 도둑) 최덕문(수사관) 등 네팀의 배우가 번갈아 출연한다. 3만5000원.7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차이무 극장. 02-762-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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