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학과 윤정숙 교수가 최근 아파트 입주민들의 감성을 분석한 주거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하자, 김주환 교수가 거들었다. “음악가 에리크 사티(1866∼1925)가 20세기 초 창조했던 ‘가구 음악(furniture music)’과 비슷한 연구 같네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늘 그 자리에 있는 가구처럼 들어도 잘 들리지 않는 음악 말이에요. 사람들이 잘 인식을 못할 뿐 감성 디자인이 적용되는 분야는 자동차와 의료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유명 현대음악가인 작곡과 윤성현 교수가 이 대목에서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감성사업단 교수님들(음악 이외 전공)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고 있어요. 20세기 중반 이성적 접근이 극단을 이룬 후 현대 음악계의 최대 화두는 이제 감성이거든요. 작가로서의 감성은 일반 청중에게 손을 내밀어 소통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전 요즘 감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김왕배 교수는 “감성사업단 교수들은 지나치게 성장 지향적인 양적 계량화 사회에서 ‘인간이 좋은 삶을 산다는 게 뭘까’를 고민한다”며 “교수들 간 느슨한 공유와 합의를 통해 낭만, 로망에 대한 향수 같은 답들을 찾아내 공감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 음악을 활용하는 비만 예방과 치료
박태선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작곡과 윤성현 교수와 함께 최근 ‘음악에 의한 비만 예방 및 치료 효과’를 연구 중이다. 그동안 비만 치료 후보물질을 발굴해 온 박 교수는 학문의 융합을 추구하는 동료 교수들과 토론하다가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는 식품뿐 아니라 소리를 포함한 다양한 자극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흔히 스트레스가 쌓이면 많이 먹게 돼 비만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증가가 비만을 초래한다. 섭취하는 음식물 양과 무관하게 코르티솔이 많이 분비되면 복부 지방세포들이 증가된 코르티솔을 인지해 지방 합성을 늘려 비대해지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고지방식을 먹는 실험용 쥐를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음악에 노출시키면 혈중 코르티솔 농도가 감소해 체중 및 내장지방이 감소할 것이란 가설을 세웠다. 몇 차례 간단한 실험 결과 아직까지 매우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유의미한 결과가 관찰됐다. 성인기에 해당하는 생후 16주된 쥐에게 고지방식을 공급하며 하루 4시간씩 음악을 들려주니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2주 후 체중이 18% 줄어들었던 것. 음악이라는 외부 자극이 고지방식으로 증가했던 코르티솔 분비를 감소시켜 비만이 해소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박 교수는 “쥐가 음악을 작곡가의 의도대로 감상하지 못했거나, 쥐의 지방세포가 음악을 단지 물리적 파장의 자극으로 감지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소리를 실험해 비만 치료 효과를 내는 소리의 물리적 특성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관심을 끈 건 이 실험에 쓰인 음악이었다. 윤 교수는 미니멀 음악(1960년대 중반 생겨난 음악 사조로 음의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한 음악)의 대가인 스티브 라이히의 음악을 편집해 쥐에게 들려줬다. 윤 교수의 아이폰으로 그 음악을 들어보니 마림바(공명기가 달린 타악기)가 최소한의 선율을 전위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실험 결과의 원인 분석이 쉽도록 음역의 변화가 심하지 않게 편집했다”며 “몇 개의 협화음(잘 어울리는 음)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특정 화성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살핀다”고 했다. 또 “결국 생체에 긍정적 작용을 미치는 주파수를 분류해 사람에게 이로운 소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교수들은 “우리도 이 음악을 들으면 좀 날씬해질까”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연세대 실험실을 함께 찾아가보니 쥐들이 키티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스피커로 라이히의 미니멀 음악을 듣고 있었다.
○ 왜 감성인가
사회학과(산업사회학 전공)의 김왕배 교수는 요즘 ‘감정노동’과 스트레스를 분석하고 있다. 감정노동이란 근로자들이 기업이 정한 인위적 감정 코드에 맞춰 자신의 감정을 조율해야 하는 노동을 뜻한다. 슬픈 일이 있어도 일하는 내내 미소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 미 델타항공 여승무원들의 근무 조건에서 개념이 생겨난 감정노동은 최근엔 법률과 의료 등 전문직까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감정노동은 스트레스를 일으켜 화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과거 원시시대에는 그날 사슴 사냥이 잘 안 됐어도 지금의 현대인처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서비스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적 원인이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감성사업단의 이공계 교수들과 교류하며 스트레스를 줄여 적정한 몸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여기서 몸은 신체와 영혼의 결합체다. 몸과 마음이 행복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생리학교실 이배환 교수는 감성의 신경과학적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또 기계공학과 정효일 교수는 인간의 체액(혈액과 침 등)을 통해 암과 같은 질환을 진단하는 바이오칩을 연구하고 있다. 고전적인 감성 측정이 뇌파 및 심혈관 활동 등에 한정됐다면 이 연구는 체액 내 바이오 마커를 찾아내 뇌 과학 연구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한다. 항암 치료를 할 때 바이오칩으로 환자의 감성을 분석해 삶을 포기하는 성향이 높으면 일단 긍정적 정서를 끌어올린 후 항암제를 투여해 치료 효과를 높이는 식이다. 정 교수는 말했다.
“요즘 ‘정의란 무엇인가’가 화두잖아요. 노사 갈등, 고부 갈등 등 각종 사회문제에도 사람들의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죠. 정치인들의 도덕성 검증도 어려운 문제고요. 인문, 사회과학에서 제기된 문제의 원인이 되는 감정 변화를 과학적으로 진단하는 바이오칩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봅니다. 10년 후쯤엔 동네 약국에서 임신진단 키트를 사듯, 감성진단 키트를 구입해 자신 또는 가족의 감성을 손쉽게 체크할 수 있을걸요?”
○ 긍정적 감성과 소통의 힘
인간의 소통 능력을 연구하는 김주환 교수는 “눈부신 과속 성장의 사회적 후유증을 해결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휴먼 마인드 기술’이 발달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로보틱스, 뇌 과학, 심리학, 철학, 언어학, 인류학, 공학 등이 총체적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내야 하는 기술이다.
감성사업단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자의 정신건강 측정, 긍정적 감성의 힘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연세대 박물관장인 사학과 김도형 교수는 사업단 활동에서 영감을 얻어 연세대 박물관을 앞으로 전시장, 공연장이 융합된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런 유익한 학문 융합 모임이 왜 그동안 부족했을까 물었더니 교수들이 웃으며 말했다. “일단 다른 전공을 가진 교수들끼리 친하게 어울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우린 시도 때도 없이 만나 수다를 떠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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