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임진강변 언덕 위에 황희 정승의 반구정(伴鷗亭)이 있습니다.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임진강에서는 갈매기 대신 철새를 자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조선 중기의 문신이요 학자인 허목(許穆) 선생의 ‘반구정기(伴鷗亭記)’를 보면 예전의 주변 정황은 현재와 많이 달랐던 듯싶습니다. ‘매일 조수(潮水)가 나가고 뭍이 드러나면 하얀 갈매기들이 날아드는데 주위가 너무도 편편하여 광야(廣野)도 백사장도 분간할 수 없다’는 글이 당시와 현재의 풍경이 많이 다름을 알게 합니다.
갈매기를 벗하던 또 하나의 정자가 한강변에 있었으니 그것이 한명회의 압구정(狎鷗亭)입니다.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4동 뒤편에 가면 당시 압구정이 있던 자리에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면 당시의 압구정이 한강변에 바투 인접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한명회가 명나라 재상 예겸(倪謙)에게 청하여 얻은 것입니다. 갈매기는 사람이 길들일 수 없는 것이니 만물의 다스림을 무심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황희 정승에 대한 칭송은 인구에 너무 많이 회자되어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정승 자리에 있었고 ‘세종 같은 임금에 황희 같은 정승’이라는 말만으로도 그가 훌륭한 재상이었다는 평가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황희가 나이가 많아 세종에게 치사(致仕·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를 요청했을 때 세종은 그것을 윤허하지 않고 그에게 궤장(궤杖·의자와 지팡이)을 하사하여 계속 곁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한명회는 조카인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세조의 일등 정난공신입니다. 김종서 등 단종의 신하들을 죽이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을 위시하여 단종 복위운동에 가담했던 사육신을 주살케 하는 등 모반과 정적 제거의 피바람을 부르며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를 얻고 두 딸을 왕실에 시집보내 두 명의 왕비를 배출한 인물입니다. 그렇게 평생 천하의 권세를 누리던 한명회가 말년에 갈매기를 벗하며 살겠다고 자신의 호를 딴 압구정을 짓고 거기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반구정을 보면 압구정이 생각나고, 압구정을 보면 반구정이 생각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자리에 올라 평생 권력의 핵심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비슷하지만 그들의 인품과 존재 방식은 너무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두 사람에게는 ‘갈매기’라는 공통점이 남아 있습니다. 두 재상에게 있어 갈매기는 무엇을 상징했던 걸까요?
갈매기는 백성의 상징이요 민심의 상징입니다. 갈매기는 기미를 잘 아는 특징이 있어 누군가 갈매기에게 해할 마음을 품으면 절대 하강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바라보면 자유자재로 상승하강하며 장관을 이룹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매기를 반려나 동반으로 생각한 ‘반(伴)’구정과 희롱하며 지나치게 친하려 한 ‘압(狎)’구정은 근본적으로 의미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갈매기를 대하는 자세야 정치적 관점이지만 민심이 천심이라는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치하시는 분들, 반구정과 압구정을 둘러보며 갈매기의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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