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새 시집을 낸 조정권 시인은 “고
여 있으며 고요한 시를 쓰고 싶었지만 약간
파열이 생긴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도시의 아파트 속으로 칩거한 뒤 고요의 정수를 쓰고 싶었습니다.”
6년 만에 새 시집 ‘고요로의 초대’(민음사)를 낸 조정권 시인(62)은 “지난번 시집 ‘떠도는 몸들’에서는 떠돌아다니며 예술가의 혼을 찾아다녔는데 이번 시집에는 한 곳에서 맑게 고여 있으려 했다”며 웃었다.
경희사이버대 교수인 그는 강의 등 꼭 나가야 할 일이 아니면 집에만 머물렀다고 한다. 도시 속의 칩거생활이 가능할까 궁금했다. 15일 그를 만난 장소도 서울 노원구 월계동 그의 집 근처였다. ‘저자와 차 한잔’이란 시리즈 제목이 무색하게 인터뷰는 오후 2시 조 시인의 단골 치킨집에서 생맥주 한 잔씩을 곁들여 진행됐다.
‘…/쉬세요 쉬세요 쉬세요 이 집에서는 바람에 날려 온 가랑잎도 손님이랍니다/많은 집에 초대를 해 봤지만 나는/문간에 서 있는 나를/하인(下人)처럼 정중하게 마중 나가는 것이다/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오십시오/그 무거운 머리는 이리 주시고요/그 헐벗은 두 손도’(시 ‘고요로의 초대’에서)
1969년 등단한 조 시인은 1991년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이란 구절이 들어 있는 시집 ‘산정묘지’로 김수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그때 “정신의 드높음 속에 있는 깊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시인은 최근 한결 부드러워졌다.
“시 중독자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거운 머리, 헐벗은 손 이런 부분은 내가 나를 어루만져 주는 거죠.” 그는 원래 서정시 부문인데 그 서정의 갈래 속에서 정신이란 부문을 끄집어낸 새로운 정신주의 시를 추구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문단에서는 그를 ‘유파로부터 자유로운 1인 종교의 1인 신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시인은 고독과 외로움에 익숙해야 한다”는 그는 극심한 불면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밤새워 시를 쓰다 새벽 5시에 자리에 눕는,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밤이 주는 휘황찬란한 축복은/불면./불면이야말로 내 안에서 살아왔던 산타클로스./김 추기경도 말년을 불면 속에서 살았듯이/(신은 인간에게 불면을 주셨다)/…’(시 ‘신성스러운 불면’에서)
조 시인은 시 ‘동물에게 진 죄’ ‘빗자루’에서 동물 학대, 식물 유전자 조작을 비판했고, ‘1인 시위’에서는 국회 앞 1인 시위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이번 시집에서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편을 뽑아 달라고 했더니 ‘산 채로 캔 칼’을 꼽았다.
‘충남 금산군 서대산 상곡리 산골 비집고 들어갔더니/바람 빠진 농구공 출입구 길 막고/맹추위가 마중 나와 있더군요./골짜기에는 겨울이/산벚꽃 꽃망울을 하늘 깊이 묻어 두었더군요./…’
지난해 4월 산벚꽃을 보기 위해 서대산을 찾았지만 아직 남은 추위에 꽃은 피지 않고 칼바람만 맞은 것을 그렸다. “결과적으로 허탕을 쳤지만 삶이라는 게 허탕 칠 때도 있어야 하죠. 허탕 칠 것을 알면서도 할 수도 있고. 올봄 산벚꽃을 보러 다시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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