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욕망을 끄집어내 흑조로 변신한
발레리나 니나(내털리 포트먼)는 정신분
열 증세에 시달리며 자기 파괴로 치닫는
다.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결핍된 재능에 대한 열망은 때론 죽음보다 강하고 삶의 무게보다 버겁다. 이런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기도 하지만 화살을 자기에게 돌릴 때는 파멸로 이어진다. 예술가들이 때때로 자기 귀를 자르고 아내를 살해하기도 하는 이유다.
완벽에 대한 예술가의 강박은 동서고금의 문학과 예술작품에서 익히 보아 왔던 소재다. 24일 개봉하는 ‘블랙 스완’은 이런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낸 수작이다. 주연 배우 내털리 포트먼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그래서 돋보인다. ○ 백조와 흑조 ‘두 날개’로 난 포트먼
포트먼은 이 영화를 위해 자기를 버렸다. 주인공인 발레리나 니나 역을 연기하기 위해 9kg을 감량했다. 10개월간 하루 8시간씩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 발레리나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그는 이 영화로 27일(현지 시간) 열리는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백조의 호수’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영화 속 발레 ‘백조의 호수’는 마법에 걸려 ‘백조’가 된 공주와 그를 구원하려는 왕자, 그리고 왕자를 유혹해 차지하려는 ‘흑조’로 이루어진다.
테크닉도 뛰어나고 외모도 아름다운 니나는 주인공으로 선발된다. 선(善)을 상징하는 백조 역을 하기에 더없이 어울리는 그이지만 관능적 매력을 발산하며 왕자를 유혹해야 하는 흑조를 연기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무용단 단장 토마스(뱅상 카셀)는 니나에게 ‘자기 내면의 성적 욕망을 끌어내 관객을 유혹하라’고 몰아붙이고 매혹적인 동료 발레리나 릴리(밀라 쿠니스)는 호시탐탐 그의 흑조 배역을 노린다. 배역을 뺏기지 않으려는 니나는 흑조가 되기 위해 자기 부정에 빠져든다.
흑조가 되기 위해 니나는 먼저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을 꿈꾼다. 좌절한 삼류 발레리나 출신인 어머니는 니나를 최고의 발레리나로 만드는 것이 꿈이지만 그를 어린애 취급한다. 어머니는 다 큰 딸의 욕망을 거세하듯 매일 니나의 손톱을 깎아주며 그에게 집착한다. 매일 ‘우리 착한 애기’를 되뇌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마약과 술에 손대면서 니나는 차츰 ‘흰색’을 버리고 내면의 ‘검은색’을 불러낸다. 관능과 순수라는 평행선 사이를 오가던 니나는 점점 피폐해진다. 그의 위는 음식을 거부하고 등에는 자기 학대의 손톱자국이 남는다. 환청과 환각이 그를 괴롭히고 검은 옷을 입은 도플갱어(분신)가 그의 주위를 맴돈다. 그는 흑조와 함께 지옥으로 빠져든다.
○ 지루하지 않은 발레 영화를 만든 아로노프스키 감독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스릴러 형식을 도입해 속도감 있게 내달리면서 ‘발레 영화는 지루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깼다. 니나의 심리적 갈등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스크린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 현실과 환상을 교묘하게 혼합한 장면들은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긴다. 클린트 맨셀이 작곡한 영화음악도 관객의 긴장과 이완을 교묘하게 조절한다.
아로노프스키는 몸의 언어의 순수성을 믿는 감독이다. 2009년 개봉한 전작 ‘레슬러’처럼 이 영화에서도 훌륭한 몸의 언어를 선보인다. ‘레슬러’에서는 늙은 종마 같았던 왕년의 섹시스타 미키 루크를 완벽한 레슬러로 변신시켰다. 이 영화에서는 포트먼의 몸에서 기름기(체지방)는 다 빼고 근육과 뼈만 남겼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포트먼은 토슈즈를 신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발레리나의 몸짓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108분의 상영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숨 가쁘게 전개된다. 니나가 양 날개로 비상해 ‘백조의 호수’를 마치고 막이 내리는 순간 영화 속 관객들이 그러했듯 영화 관객들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즈음 ‘브라보’를 외칠 만하다. 포트먼을 위해, 그리고 아로노프스키 감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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