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유혹에 빠진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아는 성경 창세기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선악과 하면 무의식적으로 사과를 떠올린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선악과가 사과라고 명시한 구절은 없다. 뱀이 이브를 꼬드길 때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열매”라고 했다고 적혀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하나같이 선악과로 사과를 그려 놓았다. 남자의 목젖을 영어로 ‘아담의 사과(Adam's apple)’라고 하는데 선악과를 삼키다 목에 걸린 것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에도 선악과가 사과라는 인식이 투영돼 있다.
사람들은 왜 선악과가 사과라고 생각하게 됐을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라틴어 해석의 이중성과 서양신화 속의 사과에 대한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얽혔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였지만 우리가 읽는 성경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92년이 지난 405년에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이 라틴어로 완역된다. 유럽인들은 로마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주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었다.
선악과를 사과로 인식하는 것은 바로 라틴어 번역에서 비롯됐다. 선악을 표현할 때 말루스(malus)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 단어의 이중적 의미가 선악과를 사과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라틴어 사전을 찾아보면 말루스라는 단어에는 악(evil)이라는 뜻과 함께 사과(apple), 배의 돛(mast)이라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우리말에서 배라고 하면 먹는 배, 타는 배 그리고 신체의 일부인 배를 동시에 연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라틴어로 말루스 나무라고 하면 선악을 구분하는 나무라는 추상적인 뜻도 되지만 사과나무라는 의미도 된다. 선악과를 사과라고 여기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유럽 언어에서 사과가 갖는 보편적 의미 때문이다. 예컨대 고대 영어나 프랑스어에서는 사과를 나타내는 단어가 과일이라는 뜻의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외부에서 전해진 낯선 과일에는 무조건 사과(apple)라는 단어를 붙여 과일이라는 의미를 나타냈는데 예컨대 파인애플(pineapple)은 솔방울처럼 생긴 과일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또 고대 영어에서 오이는 ‘cucumber’라는 단어가 생기기 전까지 ‘땅에서 나는 사과’라고 불렸다. 프랑스에서는 감자가 땅에서 나는 사과였다.
성경에는 선악과를 열매(fruit)라고 표현했는데 고대 유럽 언어에서는 사과가 바로 열매를 뜻하는 단어였으니 선악과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사과와 이미지가 연결된다. 거기에 르네상스 화가들이 선악과로 사과를 그려 넣었으니 시각적으로도 사과가 선악과라는 이미지가 굳어진다.
이 외에도 유럽에서 사과는 금기 과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백설공주’에서 사과는 먹으면 안 되는 금지된 과일이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는 과일이 사과다. 서양인들의 인식 속에 알게 모르게 사과는 금지된 과일, 선악과라는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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