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日 아쿠타가와賞 ‘고역열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6일 03시 00분


일용노동자 자전 소설
밑바닥 남루한 일상… 적나라하게 그려내

아사히신문 제공
아사히신문 제공
지난달 제144회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은 소설가 니시무라 겐타(西村賢太)의 ‘고역열차(苦役列車)’(신초샤)에 일본 문학팬들의 반응이 뜨겁다.

저자 니시무라는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며 경제적 풍요로움과 따뜻한 가정에 목말라하는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다.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아버지 때문에 하루아침에 가족이 붕괴되고 엄마, 누나와 함께 야반도주했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불행한 인생 경험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작가의 내면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私)소설인 셈이다. ‘기코토와’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공동 수상한 여성 소설가 아사부키 마리코(朝吹眞理子)가 유명한 문학가 집안 출신이라는 점에서 니시무라의 수상은 더욱 돋보인다. 마치 ‘순수문학은 고귀하고 순결하다’는 주류적 편견을 뒤집는 반란 같다.

소설 속 주인공 간다(貫多)는 일당 5500엔을 벌기 위해 누렇게 땀에 찌든 티셔츠에 냄새나는 청바지 차림으로 작업장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간다의 인생사전에는 ‘미래’ ‘희망’ ‘계획’ 따위는 없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때울 밥값과 술값, 매음굴을 위한 화대 걱정뿐이다. 가족과 인연을 끊은 지도 오래고,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삶을 그냥 본인의 숙명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어제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에게 난생처음 친구가 생기지만 그마저도 관계가 소원해지자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라며 체념한다.

100여 쪽 분량의 이 소설은 온통 우울하고 심란하기 이를 데 없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지만 독자들은 적나라한 밑바닥 생활을 보면서 묘한 위안을 받는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데서 오는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니시무라는 수상 소감 인터뷰에서 “책을 읽는 분들이 ‘나보다 한심한 사람도 있구나,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구원받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면 기쁘겠다”고 했다.

출판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발행 후 열흘 만에 2쇄를 찍을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안정된 직장 없이 살아가는 2000년대의 일용직 노동자 ‘프리타’들의 공감하는 글이 넘쳐난다. 30대의 한 독자는 블로그에 “잘난 사람이 아니면 출세하기 힘든 사회, 걸출한 능력이나 청결한 외모를 가진 신사숙녀가 그들만의 네트워킹을 공고히 구축하는 시대에 ‘고역열차’는 잘나지 못한 자의 소외감을 다룬 고마운 책”이라고 적었다.

일본 문학계에서는 고역열차를 ‘사소설의 복권(復權)’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한때 사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의 빈곤이 가져온 결과’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공과 상상이 넘치는 인터넷소설이 판치는 상황에서 현실적이고 인간미 느껴지는 ‘리얼리틱 소설’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예평론가 도미오카 고이치로(富岡幸一郞)는 “빈곤과 격차, 고령화, 자살 등 일본의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라는 문학계의 고민이 앞으로 사소설 형식을 빌린 글쓰기의 유행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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