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부담 없이 마음껏 달려라’ 운전자들에게 주어진 주문은 이것뿐이다. 한 참가자가 벤츠 ‘SLK55 AMG’ 모델로 ‘드리프트’ 주행기술을 연습하며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자동차로 즐기는 가장 짜릿한 체험은 무엇일까. 자동차게임처럼 고성능차로 드리프트(옆으로 미끄러뜨리며 주행하는 기술)를 마음대로 구사하기도 하고 길 밖으로 벗어나 장애물과 부딪혀도 사람과 차가 다치지 않는 것일 게다.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환상을 실현시켜 주는 극한의 이벤트가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주최하는 ‘AMG 드라이빙 아카데미 윈터 스포팅 어드밴스트 프로그램’.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에 메르세데스벤츠 최고 성능 모델을 타고 빙판 위를 달리는 기분 ‘째지는’ 체험을 해봤다.》 ○ 첫째 날, 어떻게 이런 데서 차를 타라고
2월 18일(현지 시간) 독일 뮌헨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5시간 정도 걸려 스웨덴 북부지역의 아르비사우르(Arvidsjaur)라는 시골 버스 터미널 같은 공항에 도착했다. 주변 풍경은 완전히 설국(雪國)이다.
다시 공항에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리에플로그라는 인구 3200명 소도시 인근의 산 정상. 객실이 40개 정도 있는 아담한 호텔이 그곳에 있다. 풍경은 한마디로 숨이 막혔다. 차갑고 투명한 공기와 산 아래로 깨끗하게 펼쳐진 침엽수림, 눈에 덮여 있는 호수.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엽서처럼 사진이 나왔다.
짐을 풀자마자 강사들은 차로 10여분 떨어진 아이스 서킷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끝없이 넓게 펼쳐진 호수인데 얼음이 두께 70cm로 얼어붙어 비행기가 착륙해도 된다고 한다. 거기엔 20여 대의 메르세데스벤츠 AMG 모델들이 ‘도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체험프로그램 참가자는 기자를 포함해 유럽과 아시아에서 온 30명.
벤츠의 윈터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525마력 ‘E63 AMG’를 몰고 아이스 서킷으로 가고 있다. 이들에겐 설원 위의 무한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AMG는 500마력을 넘나드는 최고성능 벤츠만 전담 생산하는 벤츠의 자회사다. 마련된 차종은 △‘SLK55 AMG’ △‘C63 AMG’ △‘C63 AMG 왜건’ △‘E63 AMG’ 등 4종류. 모두 일반 도로에서도 조심스럽게 운전해야 할 정도로 출력이 과분한 차종들인데 이걸 빙판에서 운전하라니.
사전 안전교육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서킷으로 들어가란다. 서킷은 모두 3종류로 호수 위에 쌓인 눈을 제설차량으로 치워서 길을 내놓은 것이다. 각 서킷의 길이는 약 2km이고 그 외에 직경 220m짜리 원형 주행장도 있다.
우선 두근거리는 심장을 추스르며 차에 앉았다 스파이크가 박힌 스터드 타이어가 끼워져 있어도 출발이 쉽지 않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타이어가 심하게 헛바퀴를 돌면서 비틀비틀 앞으로 나간다. 계기반에 나타난 온도계는 영하 25도인데 등에서 삐질삐질 땀이 흘러내린다. 동승자와 번갈아 타며 3시간을 줄곧 달리고 또 달렸다. 상당수 운전자는 주행로 옆으로 치워놓은 눈에 가서 처박혔고 구난용 차량으로 쓰이는 ‘G55 AMG’와 ‘우니모크’가 달려와 꺼내준다.
이게 기본 트레이닝이란다. 아니 그럼 내일과 모레 본격적인 연습은 도대체 어떤 거란 말인가.
○ 둘째 날, 감이 오네, 감이 와
눈이 쌓인 아이스 서킷 전경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강사들이 이론교육을 해준다. 이론 교육을 먼저하고 주의사항도 한가득 안겨준 뒤 연습에 들어가는 일반 자동차교육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르다. 일단 빙판길 운전을 실컷 느껴본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을 고쳐야 하고 어떻게 운전해야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이날 연습은 ESP(차가 미끄러지거나 바퀴가 헛도는 것을 막아주는 안전장치)를 끈 상태에서 달리는 것이다. ESP를 켜도 제대로 달리기가 힘들었는데 끄고서 어떻게 하라고. 속으로 ‘독일놈들 정말 무지막지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역시 예상대로 처음에는 차가 제대로 가지를 않는다. 출발도 힘들고 직진에서도 차가 게걸음을 친다. 어제보다 땀은 더 난다.
산 정상의 아담한 호텔인 ‘AMG 라운지’ 그런데 묘한 게 몇 시간 더 그렇게 빙판길만 달리다보니 차의 미끄러짐이 미리 예상되고, 나도 모르게 그에 맞춰 한 박자 빨리 운전대를 감고 가속페달을 조절하며 점점 커브길에서 속도를 높이게 됐다. 커브가 나오면 브레이크를 살짝 밟으며 운전대를 움직여 차를 옆으로 스르륵 흐르게 한 뒤 45도로 미끄러뜨리며 가속페달을 밟아서 돌아나오게 된다. 바로 드리프트 주행법이다. 때론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자신감이 생기면서 점점 속도를 올리게 됐다.
직선에서는 시속 100km까지 내기도 하고 커브에선 시속 80km로 드리프트를 하며 돌아나가기도 했다. 어느새 빙판 위에서 차가 옆으로 미끄러져도 너무 태연하게 자세를 바로 잡아나가고 커브길에서 드리프트를 안 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가 되어갔다. 운전 경험이 풍부한 기자뿐만 아니라 일반 참가자들도 자연스럽게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동승자도 완전히 익숙해졌는지 드리프트하는 차 안에서 졸기까지 한다. 눈길 드리프트는 운전자의 본능이었다.
○ 셋째 날, 나도 이젠 눈길 랠리 레이서
강사에게 이론교육을 받고 있는 참석자들. 4종류의 차를 골고루 타본 뒤 마지막 날에는 모든 참석자가 C63 AMG를 타고 차례로 달려서 우승자를 가리는 이벤트가 열렸다. 2개의 카메라와 주행기록계가 장착된 차에 올라타고 달리면 서킷을 1회 주파한 시간이 나오고 기록이 가장 짧은 참가자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모두 레이서가 된 기분이었다. 첫날엔 자신감이 없었던 참가자들도 사흘째가 되면서 능숙하게 눈길을 주파해나갔고 묘기운전도 꽤나 잘하게 돼서 혹시라도 우승을 차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진지하게 달리는 모습이었다.
대형 이글루에서 열린 샴페인 파티. 우승은 아들과 함께 온 50대 독일인이었는데 이미 4번째 참가라고 했다. 우승자 외에도 참가자 상당수가 몇 번씩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만큼 눈길 운전의 매력은 대단했다. 강사가 운전하는 스노 랠리용 레이싱카에 동승해 빙판길에서 시속 180km까지 달리는 ‘아이스택시’ 체험은 이 행사의 백미(白眉)다. 참가자들은 “사흘 만에 운전실력이 훌쩍 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 넷째 날, 언젠가는 다시 또 오리라
뮌헨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오전은 스노스쿠터를 몰고 스웨덴의 산길을 누비는 이벤트가 마련됐다. 침엽수림 사이를 쏜살같이 누비는 것인데, 처음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춥고 힘들지만 마칠 때쯤에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운전에 치진 참석자들을 위해 맛깔스런 음식을 준비 중인 호텔 주방. 메르세데스-벤츠 제공 언어로 다 표현하기 힘든 스웨덴의 아름다운 자연, 질주본능, 편안한 숙박, 맛있는 식사는 내년에도 오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한 참가자는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오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뮌헨행 비행기에 올라 아스라이 멀어지는 스웨덴 땅을 내려다보면서 왜 많은 참가자가 반복해서 참가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행사는 매년 1∼3월 모두 7차례 열리는데 참가비는 3740유로(약 580만 원)이다. 뮌헨∼스웨덴 왕복항공편과 숙식 등 모든 비용이 포함돼 있다. 문의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나 www.mercedes-amg.com/driving-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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