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발굴 방지” vs “되레 문화재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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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2월 제정 ‘조선후기 이후 유적 발굴 제한’ 法조항 싸고 문화재청-고고학계 대립

《“과잉 발굴을 막고 발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다” “소중한 문화유적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문화재청이 올해 2월 제정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 관련 법령 가운데 ‘발굴 제한 및 금지’ 조항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2월 제정된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달 이 법률의 시행규칙과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했다. 문화재청의 취지는 지표조사 발굴 등 매장문화재 조사의 남용을 막아 사회적 비용(발굴비용은 대부분 사업자가 부담)을 절감하자는 것. 그러나 고고학계는 “실제 내용을 보면 취지와 정반대로 문화유적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2009년 서울 남산의 서울성곽터에서 발굴된 조선신궁 비석 기단. 조선신궁은 1925년 조선총독부가 지은 건물이다. 문화재청이
새로 제정한 발굴조사 기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후의 매장 유적은 발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일제강점기 유적
등의 발굴조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9년 서울 남산의 서울성곽터에서 발굴된 조선신궁 비석 기단. 조선신궁은 1925년 조선총독부가 지은 건물이다. 문화재청이 새로 제정한 발굴조사 기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이후의 매장 유적은 발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이 같은 일제강점기 유적 등의 발굴조사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 DB
핵심 쟁점은 발굴조사 실시 기준.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4조에 따르면 조선시대 후기 논밭이나 삼가마(삼을 삶던 가마)는 발굴 대상에서 제외된다. 조선 후기의 민가와 민묘 일부도 발굴을 할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이후 유적은 모두 발굴을 할 수 없게 된다. 자연 도랑과 자연 수혈(구멍 포함)은 시대와 관계없이 발굴할 수 없다.

○ 고고학계 “유적 파괴 초래”

고고학계가 가장 크게 문제 삼는 부분은 조선 후기 논밭 발굴조사를 금지한 것. 이 규정에 따르면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가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고 학자들은 지적했다. 발굴하지 않고선 조선 중기 이전인지 후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조항은 애초부터 모순이라는 것. 석회로 밀봉한 회곽묘의 경우 내부에서 미라, 수의, 편지 등이 다수 발견되는데도 이를 발굴하지 않는다는 것은 생활사료를 방기하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자연 도랑 역시 선사시대 이래 목기, 동식물 유기물이 발견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이후도 필요한 경우에는 발굴을 해야 한다. 발굴 실시 여부는 현장에서 전문가들이 판단해 결정할 일이지 애초부터 기준을 정해놓고 발굴을 하라, 말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를 빌미로 현장에서 유적이 나와도 사업자들이 이를 파괴할 우려가 높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 문화재청 “국민을 위한 발굴 기준”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발굴기관의 판단만으로 발굴을 확장해 나가면 그 비용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예지만, 1만 평이 넘는 곳을 발굴했는데 부서진 가마 하나만 발견된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발굴 비용은 10억 원이 들어갔다. 이러면 낭비 아닌가. 시굴조사를 해봐도 70%는 유적이 안 나온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유적을 다 발굴할 것이 아니라 세부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발굴을 할 필요가 있으며, 그래서 기준을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조선 후기의 단순한 논밭을 발굴한다 해도 학술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동안의 발굴 지도위원회 결과를 봐도 조선 후기 민가를 발굴해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경우는 없었다”고 말했다.
고고학계는 발굴 조사요원의 기준(시행규칙 제14조)도 문제 삼고 있다. 조사원 자격기준을 지나치게 현장 실무경력 중심으로 바꿔 대학에서 연구를 병행하면서 학술적 전문지식을 습득한 자는 절대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매장문화재 발굴은 단순 기능만이 아니라 학문적 전문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발굴기준과 관련해 지난해 의견도 제시하고 용역 결과도 제출했는데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잘못이 바로잡힐 때까지 결연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의 심영섭 발굴제도과장은 “실제 현장에서의 발굴 성과 데이터를 놓고 학계와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학계와 사업자(국민)가 함께 참석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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