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둑이 급격히 약해졌다. 한국과 중국에 치여 내세울 만한 프로기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이유를 공동 연구의 차이에서 찾는 사람도 많다. 일본 바둑계는 여전히 ‘홀로 연구’가 대세이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프로들의 공동연구가 성행한다.
공동연구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 곳은 중국. 1990년대와 2000년대 후반까지 세계 바둑을 주름잡던 이창호 9단을 잡기 위해 중국기원은 국가 차원에서 이창호 바둑 연구에 들어갔다. 이후 중국 바둑계는 급성장했다. 이창호의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30대 중반이라는 나이 탓도 있지만 그의 바둑이 국내외에서 낱낱이 해부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여 년 전 충암연구회가 처음으로 공동 연구를 시작한 이래 최근 프로기사의 연구모임이 크게 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구청 인근의 한 아파트 상가 사무실. 젊은이 10명 정도가 바둑을 두거나 혼자서 기보를 놓고 있었다. 모두가 프로기사. 목진석 9단이 주축이 돼 운영하는 ‘으뜸연구실’이다. 목 9단의 어머니가 지난해 개원할 때 “바둑의 으뜸이 되라”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요즘에는 상가 이름을 따 ‘셰르빌 연구실’로 불린다. 이들은 매주 월 수 금요일 사무실에 나와 바둑을 둔다. 안조영 9단은 “오전에는 주로 최신 기보 등을 함께 연구하고 오후에는 리그전을 한다”고 말한다. 목 9단도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성적도 오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기사 36명이 토요일마다 자체 리그전을 펼치는 소소(笑笑)회는 공동연구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허장회 최규병 프로가 이창호 유창혁 등과 만든 충암연구회가 그 전신. 당시 공동 연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충암 출신 프로기사가 100명을 넘어서고, 이들 프로의 바둑 단(段) 수 합계가 500단을 넘은 지도 3년 전이다. 현재 소소회는 토요 리그전 외에도 화요일마다 2개조로 나뉘어 최신 기보를 공동 연구한다. 소소회 토요 리그전에 참가하면서 다른 연구실 회원인 경우도 제법 있다. 5일 오전 평상복 차림으로 리그전에 참가한 루이나이웨이 9단(48)은 10대와 20대 프로기사 가운데 최고령(?)이었다. 루이 9단은 “대국하면서 젊은 프로들로부터 새로운 포석이나 최신 유행정석 등을 많이 배운다”고 말했다.
소소회에서 가장 먼저 분리한 곳은 왕십리연구회(현 신사연구회)다. 6년 전 최철한 9단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박정환 9단, 원성진 9단, 허영호 이영구 8단, 김지석 7단 등 상위 랭커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삼천리자전거의 후원으로 체력단련실과 샤워장도 갖춘 연구실에서 회원들이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박지은 9단이 동료들과 함께 서울 홍익대 부근에 연구실을 마련했다. 단골 멤버는 박영훈 9단과 송태곤 9단 등. 또 한국기원 4층에는 여자 기사들이 조한승 9단과 함께 연구모임을 운영 중이다.
김승준 9단은 “공동연구는 혼자로선 결론을 내기 힘든 부분에 대해 여러 의견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기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며 “한국 바둑이 강해진 것도 공동연구 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 프로기사들의 연구모임 ::
△소소회(옛 충암연구회)
1988년 허장회 최규병 유창혁 이창호 등 충암고 출신을 주축으로 결성. 현재 젊은 기사 70여 명이 회원. 회장 윤준상 8단(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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