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실용 백과사전 ‘임원경제지’ 민간 번역사업 자금난에 중단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임원경제지’를 현대어로 번역하기 위해 8년째 매달리고 있는 임원경제연구소 소속 젊은 학자들. 출간비용을 마련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임원경제지’를 현대어로 번역하기 위해 8년째 매달리고 있는 임원경제연구소 소속 젊은 학자들. 출간비용을 마련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젊은 학자 마흔두 명이 8년째 계속해온 조선시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번역사업이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임원경제지’의 가치를 아는 학자와 지인 20여 명이 ‘임원경제지 번역출판 후원회’까지 결성했지만 역부족이다.

‘임원경제지’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풍석 서유구(1764∼1845)가 30여 년에 걸쳐 농축수산업 원예 요리 기상 지리 의약 건축 음악 서화 등 실생활과 관련한 16개 분야의 지식을 백과사전식으로 집대성한 책. 16개 분야의 지식을 담았다고 해 ‘임원십육지’로도 불리는데 52책 113권(오늘의 장 개념) 250여만 자로 그 방대함을 자랑한다.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이 실용지식이 없어 경제적 생활을 못하는 시골의 지식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인 만큼 책에는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재현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가득하다. 논에 물을 대는 데 사용하는 ‘자승차(自升車)’ 같은 큰 기구부터 베개를 만드는 방법, ‘동의보감’ 못지않은 방대한 의학 지식, 밭의 두둑과 고랑을 만들어 생산량을 늘리는 법, 다양한 재료로 만드는 술과 음식에 관한 정보 등 구체적인 지식을 담았다.

임원경제연구소(www.imwon.net) 정명현 소장을 비롯한 42명의 젊은 학자가 ‘임원경제지’의 번역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3년 초. 정 소장의 지인 중 이 책의 가치를 알아본 송오현 DYB최선어학원장이 6억 원의 번역지원금을 쾌척한 것이 발판이 됐다. 임원경제연구소는 젊은 학자들이 ‘임원경제지’ 완간을 위해 만든 사단법인이다.

젊은 학자들은 ‘임원경제지’가 단지 읽기 위한 옛 지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예로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새 유기농법 개발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자 학자들은 ‘임원경제지’에 나와 있는 전통 농법 강의로 도움을 줬다.

지금까지 문학 사학 철학 한의학 의학 과학사 국악 수학 미학 가족학 등을 전공한 학자 42명이 참여했다. 전종욱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원은 “한문과 전문지식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역자가 적어 지금까지 완역이 되지 못했다. 임원경제지는 조선의 학문이 먹고사는 문제에도 큰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필사본 형태로만 남아있는 ‘임원경제지’의 여러 필사본을 종합해 정비하고, 분야별로 초벌 번역을 마쳤다. 중국 사료까지 참고해 필사본의 오류까지 바로잡으며 꼼꼼히 번역을 하는 동안 초기 지원금은 바닥이 났다. 출간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고민이다.

2009년 전북대와 함께 ‘임원경제지’의 농업 분야 ‘본리지’를 3권으로 출간했지만 번역과 출간의 주체에 대한 견해차로 결별한 후 독자 출판을 추진 중이다.

올해 1월 후원회가 출범할 당시 임원경제연구소는 후원자들에게 2014년 3월 총 113권(권당 200쪽 내외)으로 완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출판에 필요한 교열과 삽화(1만여 장을 별도로 제작) 등을 위해서는 현재 2명의 상근연구 인력으로는 힘에 부친다.

정 소장은 “논문을 쓰기 위해 완역을 기다리는 연구자도 있다”며 “현대어 번역이 완료되면 다양한 관련 분야 학술연구가 활성화되고 문화적 자산이 풍부해질 것인 만큼 되도록 빨리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