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선사시대에서 인류의 미래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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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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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위대한 여행
앨리스 로버츠 지음·진주현 옮김 652쪽·2만5000원·책과함께

박선주 충북대 교수 고인류학 전공
박선주 충북대 교수 고인류학 전공
이 책은 두 여성 인류학자의 노고로 한국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저자 앨리스 로버츠 씨는 영국 브리스틀대 해부학과 교수이자 의사로서 BBC방송의 제의를 받고 이 책의 저술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했다.

역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스탠퍼드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수학했으며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소속 합동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JAPC)에서 법의(法醫) 인류학자로 활동 중이다. 인류학 전문가답게 그는 방대하고도 전문적 서술이 많은 이 책의 내용을 깔끔한 문체로 정확히 전달해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현생인류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내용에 매료돼 조상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동하는 상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고고학 및 고인류학 유적지와 박물관을 답사하고 현지 주민을 만나 함께 생활한 내용과 현생인류에 관한 고인류학계의 주요 논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호주, 북으로는 유럽과 시베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메리카까지의 긴 여정을 통해 현생인류의 기원과 궤적을 쫓아간다.

풍부한 지질학적 지식에 아프리카부터 아메리카까지 전 세계에 걸친 유적지 탐방은 먼 과거의 역사를 눈앞으로 되돌려 놓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고고학자, 유전학자와의 만남을 통해 사람이 무엇인지, 전통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들이 태어난 곳에서 계속해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도 되짚어 본다. 특히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언제 어떤 경로로 이주했는가와 관련해 고고학자와 고인류학자 사이에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런 다양한 이견을 소개하고 있다.

네안데르탈 게놈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유전학자들을 만나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혼혈에 대한 견해를 듣기도 한다. 이 같은 다양한 학자의 견해를 소개하는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인류학의 다양한 논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최근의 유전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직접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고 주민들과 생활하며, 관련 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최근 연구 성과를 직접 청취하여 기술한 것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궁극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현생인류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임을 강조한다. 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삶을 편리하게는 했으나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의 후손들이 지구의 환경 변화로 다시 수렵채집생활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위부터 시베리아 올레네크
에서 순록을 탄 에벤크족
소녀, 말레이시아 렝공 계
곡의 에어 바에 있는 전통
가옥, 길 위에서 만난 쿤과
아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 칼라하리에서 사냥하
는 모습, 최초의 현생인류
머리뼈가 발견된 곳에서
모형 머리뼈를 들고 웃고
있는 저자. 책과함께 제공
위부터 시베리아 올레네크 에서 순록을 탄 에벤크족 소녀, 말레이시아 렝공 계 곡의 에어 바에 있는 전통 가옥, 길 위에서 만난 쿤과 아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북부 칼라하리에서 사냥하 는 모습, 최초의 현생인류 머리뼈가 발견된 곳에서 모형 머리뼈를 들고 웃고 있는 저자. 책과함께 제공
저자는 앞으로도 인류가 살아남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서는 환경을 더 생각할 것을 강조한다. 과거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고, 아직도 인류에게는 멸종의 위기가 닥치지 않았다는 희망을 전한다.

아프리카에서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은 언어의 발달과 함께 절정에 달했다. 유전학자들은 동아프리카에 살던 호모사피엔스(슬기사람)의 수를 5000명 정도로 추정한다. 이렇게 적은 수의 인류 집단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이들이 같은 삶의 방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전에 인류의 기본적 특성을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생인류가 지닌 삶의 방법과 사회구조, 남녀의 역할, 종교 및 그들이 사용한 언어, 이주 경로 등은 주요 연구 대상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최초 주민 집단에 관한 고고학적 발견은 나온 바 없다. 그럼에도 선사인류 집단에 관한 놀라운 연구 성과가 보고되고 있다. 유전학자들의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유전학자들은 현생인류 집단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그들의 고향이 아프리카의 어느 곳인지, 또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무엇인지도 밝혀주고 있다. 한편 선사인류 집단과 비슷한 삶을 사는 수렵채집인의 행위를 비교 분석한 인류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는 그들의 삶과 행위의 다양한 양태를 가늠할 수 있다.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내용이다. 이 같은 현생인류에 관한 학문적 내용을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시켜줄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인류의 위대한 여행’이다.

여행하며 인류의 진화와 이동 과정을 소개하는 것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다. 고인류학 전공자로서 저자의 위대한 여행에 박수를 보내며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소개되어 고고학이나 고인류학이 우리와 멀지 않은 학문이며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님을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박선주 충북대 교수 고인류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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