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재해방지, 특히 지진예보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국가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지진 같은 재앙을 왜 예측하지 못했을까. 지진 예측이란 불가능한 일인가.(ID: mightier**)》
상상을 초월한 지진해일(쓰나미)과 인명피해를 가져온 동일본 대지진(리히터 규모 9.0)이 일어나 전 인류를 지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진의 예지(豫知)가 가능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왜 예측하지 못했을까.
1975년 중국 랴오닝(遼寧) 성 하이청(海城)에서 규모 7.3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지진이 일어나기 수일 전부터 지반이 기울어지고 소규모 지진이 다량 발생해 지진학자들이 이 지역에 지진이 곧 닥칠 것이란 예보를 했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이 지진 발생 수시간 전에 약 300만 명의 주민을 대피시킴으로써 피해를 줄여 지진 예지에 큰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해 발생한 허베이(河北) 성 탕산(唐山) 대지진(규모 7.6)에는 이러한 전조현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주민을 대피시키지 못한 채 약 25만 명이 사망했다. 불과 1년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지진이었지만 그 전조 현상은 너무나 달랐다. 지진 예지는 이렇게 어렵다.
지진 예지에는 장기예지, 중기예지, 단기예지 그리고 조기경보가 있다. 장기예지는 특정 활성단층에서 10년 내지 30년 이내에 규모 몇 정도의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으로, 활성단층과 활성단층 주변의 지층에 남아 있는 과거 지진 증거와 역사지진 기록을 관찰해 그 주기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중기예지는 특정 활성단층에서 앞으로 한 달 내지 수년 이내에 지진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는 것이다.
단기예지는 일기예보처럼 앞으로 수시간 내지 수일 내에 지진이 일어날 것을 예보하는 것인데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 조기경보는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지진파보다 전달속도가 빠른 전자파를 이용해 원자력발전소와 고속철도 등의 작동을 멈추게 하고 가스 공급과 전원을 차단하는 기술로 일본에서 개발해 이용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진의 단기예지인데, 이것이 현재 불가능한 이유는 만유인력 법칙처럼 지진의 발생을 방정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완전한 법칙을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진학자들이 지진파열(earthquake rupture)의 시작과 지각이 찢기는 양상을 모델링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단층마찰 방정식은 ‘속도-상태 변수 마찰법칙’이다. 이 법칙은 본진(本震)의 단층 움직임과 여진의 특성은 비교적 잘 예측하지만 지진의 단기예지에는 적용하지 못한다.
단기예지가 가능한 완전한 단층마찰법칙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진이 발생할 때 단층의 미끄러짐이 시작되면서 지진파가 전달되는 미시·거시적인 현상들과 이에 수반되는 물리·화학적 과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예컨대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려면 지진 발생 초기 단층 사이의 급격한 마찰력 감소가 동반하는데 현재는 이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 가설만 있는 상황이다. 단기예지를 위해 현재 많은 지진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실험과 수치 모델링 연구, 활성단층대에 대한 모니터링 연구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머지않은 장래에 지진 단기예지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진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질문은 e메일(jameshuh@donga.com)이나 동아일보 문화부(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미디어센터 12층 ‘지성이 답한다’ 담당자 앞)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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