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젖히고 지하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끝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격렬한 파도가 시선을 압도한다. 대형 스크린에서 드로잉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과,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채집한 법고 범종 목어 운판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며 초월적 분위기를 빚어낸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 조선에서 열리는 강소영 씨(41)의 ‘고요한 항해Ⅰ’전에 선보인 작품 ‘검은 파도’다. 2006년 세종기지가 있는 남극의 킹조지 섬으로 보트 항해를 시작한 이래 사람들의 발걸음이 쉽게 닿기 힘든 곳을 찾아다닌 작가. 이번 전시에서 3년간의 ‘항해일지’를 설치, 드로잉, 영상작업으로 옮겨 놓았다.
전시는 복잡한 문명세계와는 동떨어진 풍경으로 관객을 데려가 산책하는 느낌을 선물한다. ‘용의 이빨-썰물’과 ‘용의 이빨-밀물’은 백령도와 대만의 진먼 섬 등 긴장과 평화가 교차된 바다를 소재로 한 영상설치작품이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텔레비전에선 두 동강 난 포탄이 가득한 독도의 물밑 풍경을 볼 수 있다. 시간의 무상함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분쟁은 사라지고 의연하게 남아있는 섬의 풍경을 조명한 작품이다.
옥상정원에도 바다 그림과 백령도에서 가져온 굴 껍데기로 엮은 돌꽃 나무가 어우러진 유사 해안을 꾸몄다. 4월 20일까지. 02-723-7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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