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신춘문예 당선자들 ‘등단 3개월’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일 03시 00분


“책 안 내냐고 물었을때 가장 민망“

새해 첫날 신문 지면에 자신의 얼굴과 작품을 알리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하는 신춘문예 당선자들. 2011년 당선자들이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으며 등단한 지 3개월이 지났다. 축하 인사도 잦아들고 현실에 직면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쯤. 출판 관계자들은 “올해 당선자들 가운데서 특출한 인재를 찾기 어려웠다”면서도 일부 당선자와 출판 계약을 마치기도 했다. 당선자 사이에도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 “원고지 30장 쓰고 10만원”

부산일보 소설부문 당선자 배길남 씨(36)는 “처음에는 좋았죠. 평생소원 한 번 이뤄봤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집필을 위해 학원 일을 그만둔 그는 전업작가로 나선 상태. “규칙적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하지만 생활고가 점점 심해져, 주변에서는 규칙적으로 일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쓰면 어떠냐고도 하죠.”

소설가 이외수 씨의 며느리란 점이 화제가 됐던 조선일보 소설 부문 당선자 설은영 씨(34). 여성지와 아침방송에서 섭외 요청이 많이 와 한동안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전업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문예지에 원고지 30장을 쓰고 10만 원을 받았어요. 등단 전 비정규직 방송작가나 객원기자 일을 해왔는데, 막상 소설을 쓰게 되니 예전엔 정말 따뜻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휴∼.”

신춘문예 상금은 신문사마다 다르지만 보통 500만 원 내외. 당선 이후 작품에만 전념하는 당선자를 찾기는 힘들다. 매일신문 소설 부문 당선자인 안준우 씨(39)는 “무역 일을 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하려면 전업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아내가 제일 겁내는 말이 ‘직장을 접고 글만 쓰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중앙일보 소설부문 당선자인 이시은 씨(44)는 “직장일(공무원)과 병행하는 게 어렵지만 박완서 선생님은 네 아이를 키우면서도 좋은 글을 쓰시지 않았나. 당선 전에는 글 쓰면 집에서 엄청 구박받았는데 이제는 ‘도서관에 가서 글 좀 쓰고 오겠어요’라고 남편에게 말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학업 중에 당선된 신예 작가들도 고민은 크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4년에 재학 중인 서울신문 소설부문 당선자 차현지 씨(24)는 “당선될 때는 좋았는데 지금은 막막해요. 친구들은 ‘책 언제 나와’라고 그러는데 당장 나올 일도 없고요. 휴. 빨리 두각을 드러내야 하는데 다른 문학상이 또 있는지 살펴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시부문 당선자인 권민경 씨(29)는 “3개월 동안 출판사 대여섯 곳에 원고를 넘겼다. 원고료를 받은 건 한두 곳이고 나머지는 정기구독권으로 대체하더라”라면서 스트레스가 많고 책임감도 크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대학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시부문 당선자인 강은진 씨(38)는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한 뒤 봇물 터지 듯 청탁이 들어올 줄 알았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다”며 웃었다.

○ “출판 계약은 했지만, 마지막 기회라 생각”

신춘문예 당선자들은 보통 당선 2, 3년 뒤 첫 책을 낸다. 소설의 경우 눈에 띄는 작가와 먼저 계약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 중앙, 한국, 경향, 서울, 문화, 세계 등 중앙일간지 8곳, 부산일보와 매일신문 등 지방지 2곳 등 10개 신문사의 올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 가운데 현재 출간 계약을 맺은 사람은 단 3명. 이들은 1월 초 문학동네와 각각 300만 원의 선인세를 받고 출판을 계약했다.

세계일보 소설부문 당선자 천재강 씨(31)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나니 ‘진짜 소설가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들은 별다른 수입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집 안에서 글만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소설부문 당선자 손보미 씨(31)는 “나중에 책을 내 잘되면 생계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생각보다는 우선 좋은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 “신춘문예 당선은 라이선스일 뿐”


최근 신춘문예가 튀는 작품보다는 안정적인 작품을 뽑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당선자들 사이에 큰 편차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따라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 문인들에게 출판계가 주문하는 것은 ‘특출한 개성’이다.

김요안 문학세계사 기획실장은 “누적된 등단 시인만 2만 명이 넘는다. 젊은 시인들의 비문법적인 시, 중견 시인들의 서정시 등 기존 시의 틀을 뚫고 나올 수 있는 개성이 없을 경우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판사와의 계약도 만만치 않다. 현대문학 윤희영 편집부 팀장은 “두드러진 작품이 적다 보니 올해는 지난해, 지지난해에 비해 당선자들의 출판 계약도 줄어든 느낌”이라며 “앞서 출판사들이 입도선매 식으로 당선자들을 잡았지만 추후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점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평론계가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의 말. “젊은 당선자들이 늘어난 반면 문법 상상력 등 실험적인 측면은 되레 떨어진 것 같다. 최근 문단에서 실험적인 글쓰기를 볼 수 없는 경향이 신춘문예까지 확대된 것 같다. 신춘문예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받은 것에 불과하고 자기 개성이나 독창성을 가지고 결국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느냐가 문단에서의 생존을 판가름할 것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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