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23>파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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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왜 피곤할 때 파김치가 됐다고 할까

세상이 어수선한 데다 춘곤증까지 겹치니 피곤하다는 사람이 많다. 지치고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을 때 우리는 ‘파김치가 됐다’고 말한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데 왜, 그리고 언제부터 지친 모습을 파김치에다 비유하게 됐을까.

늘어진 모습을 보고 파김치가 됐다고 말하는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싱싱한 파는 꼿꼿하게 힘이 들어가 있고 다듬어 놓아도 뻣뻣한 상태를 유지한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위응물(韋應物)은 파를 인생의 청춘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파를 소금에 절이고 양념을 해서 김치로 담가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생기가 넘쳐 꼿꼿한 모습은 사라지고 숨이 죽어 늘어진 모습으로 바뀐다. 그러니 ‘파김치가 됐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어떤 채소라도 소금에 절여 놓으면 축 늘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파김치가 피곤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먼저 피곤해 늘어진 모습을 보고서 파김치 같다고 표현한 기록을 살펴보면 18세기 무렵의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피곤한 모습을 파김치라고 묘사해 놓았다. 이덕무는 ‘다리에 힘이 없어 마치 파김치처럼 늘어졌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서 파김치(총菹)처럼 부들부들 늘어졌다(軟)고 표현해 놓았다.

효종과 숙종 때 주로 활동했던 문인인 권상하의 문집인 한수재집(寒水齋集)에도 비슷한 표현이 보인다. 큰 병을 치른 후로는 기력이 꺾여서 글을 몇 줄만 읽어도 영락없이 파김치가 된다고 했다.

권상하의 문집과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나오는 표현인 것을 감안하면 조선후기에는 “파김치가 됐다”는 말이 자주 쓰인 것 같은데 이런 표현법이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니 적어도 조선중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파김치는 언제부터 담가 먹었을까. 현재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조선 초기 서거정의 동문선(東文選)에 나오는 파김치가 가장 빠른 것 같다. 파를 데쳐서 국을 끓이고 담가서 김치를 만든다(沈爲菹)라고 했다. 하지만 고대 중국의 예기(禮記)에 봄에는 파를 먹고 가을에는 겨자를 먹는다고 했으니 먼 옛날부터 파는 중요한 야채로 쓰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파로 김치도 담갔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피곤해서 늘어진 모습을 다른 김치도 아닌 파김치에다 비유한 이유는 뭘까. 평소에는 싱싱하던 파가 소금에만 절여 놓으면 심하게 축 늘어지기 때문에 생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옛날 기준으로 보면 김치를 담갔을 때 축 늘어지는 채소가 파밖에 없었기 때문에 생긴 말일 수도 있다.

옛날 김치는 지금과 같은 통배추김치가 아니었다. 조선초기에는 무로 담근 동치미나 짠지 아니면 순무를 재료로 담근 나박김치가 주종을 이뤘다. 18세기에는 지금과 같은 통배추 김치가 아니라 얼갈이배추로 주로 김치를 담갔다. 얼갈이배추는 소금에 절였다고 푹 늘어지는 채소가 아니다. 그리고 부추로도 김치를 담갔는데 부추 역시 소금에 절여도 그다지 숨이 죽지 않는 채소다.

김치를 담갔을 때 평소 모습과 달리 축 늘어지는 김치는 파김치가 으뜸이었으니 자연스럽게 ‘파김치가 됐다’는 표현이 생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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