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다. 낡은 일본 전통 가옥에서 혼자 사는 쉰여섯의 독신남 시무라 고보.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을 느낀다. 별다를 건 없다. 과일 주스 병에 담긴 주스가 약간 줄어들거나 요구르트가 한 개 없어지는 것. 바쁘게 생활하는 샐러리맨이라면 미처 느끼지 못할 사소한 차이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중시하는 고보는 이를 알아차린다. 불길하고 불안하다.
그는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일하는 기상 관측사. 부엌에 웹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무실 모니터에 조그만 창을 띄운다. 아무도 없는 부엌. 그는 상상 속으로 들어간다. ‘내가 결혼했더라면 아내를 눈으로 좇을 것이다. 그녀를 질투해서건 그녀와 떨어질 수 없어서건, 카메라 앞을 지나면서 그녀는 내 세 번째 눈에 대고 유혹적인 윙크를 보낼 것이다.’ 아내가 있을 리 만무하건만 잠시 뒤 그는 부엌에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질겁한다.
소설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폭을 맞았던 나가사키이다. 최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방사능에 대한 공포감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소설 속에서 방사성 물질 누출 등 방사능 위험이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후 폐허가 됐던 도시가 복구된 후에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낙진을 맞은 것처럼 무언가 결여된 인생을 사는 모습을 찬찬히 묘사한다.
고보는 검은 형체를 조용히 살핀다. 여자다. 그는 번개같이 수화기를 들어올려 경찰에 신고한다. 초조한 그는 모니터 속 여자를 계속 관찰한다. 그녀에겐 서두름이나 초조함이 없다.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차를 탄다. 밥솥에 쌀도 안친다. 창으로 햇살이 쏟아질 듯 부서져 내린다. 평화롭고 행복하고 환희에 찬 표정. 그녀의 모습에서 그가 꿈꾸던 삶을 본 그는 문득 경찰에 신고한 것을 후회한다.
소설은 잔잔한 일상을 깬 작은 물결을 섬세하게 끄집어낸다.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서도 추리적 요소를 가미해 흡입력을 높였다. 구성과 문체가 마치 일본 소설 같지만 프랑스 소설가의 작품이란 점이 이채롭다. 지난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2008년 5월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에 실린 사건을 소설로 풀어냈다. 그렇다. 이 기묘한 얘기는 실화다.
“‘살 곳이 아무 데도 없었다’라고 58세의 실직 여성은 해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녀는 1년 가까이 그곳에 숨어 살았다. 이따금 다른 두 집에도 번갈아가며 주인 몰래 머물렀다.”(2008년 5월 ‘나가사키 신문’ 기사)
사회면 한 귀퉁이를 차지했던 얘기는 소설을 통해 현대인이 갖는 불안한 이면을 들춰낸다. 겉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던 고보의 삶이, 무려 1년 동안이나 고보의 집 벽장 속에서 숨어 살았던 중년 여성의 개입으로 틀어지고, 고보는 애써 감춰왔던, 아니 보지 않으려 했던 삶을 직면하게 된다. “이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그는 절규한다. 자기만의 생활 속으로 칩거하게 된 현대인들의 내면적 불안을 세밀하게 끄집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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