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다 그렇듯, 바둑에서도 작전의 일관성이 중요할 때가 많다. 이창호 9단은 초반 세력을 지향했으나 얼마 안 가서 실리를 탐했다. 바로 좌상귀에서 흑 35, 37, 39로 산 것이 화근이었다. 백 집을 깨고 산 것이라 기분이 좋았겠으나 일관성이 없었다. 참고도처럼 중앙세력을 키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흑이 두기 편한 바둑이었을 것이다.
흑이 좌상귀에서 몇 집을 내고 사는 동안 주변 백돌이 강해졌다. 그 바람에 흑진에 틈이 생겼고, 최철한 9단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백 42, 44가 그것이다. 얼핏 보면 흑진 속에 외롭게 뛰어든 것처럼 보였지만 백 48, 50, 54로 자리를 잡으면서 되레 좌변의 허약한 흑돌을 공격하는 양상이었다. 결국 이 9단은 작전상 후퇴를 결정하고 흑 55, 57로 밑으로 연결해 갔다. 대궐 같던 집을 내주고, 밖에서 겨우 연명해가는 심정이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흑이 77로 중앙을 얼기설기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직은 그래도 집의 균형을 맞출 만했다. 최 9단은 만만치 않다고 보고 우하귀 백 78로 뛰어든다. 상용의 맥점. 여기서 이 9단은 백을 귀에서 살려주는 대신 세력을 강화하는 정석을 택했어야 했다. 결국 백은 80에서 88까지 날씬한 행마로 흑진에서 훨훨 날아간다.
이후로는 흑이 백을 따라잡기는 사실상 어려웠다. 최 9단은 두텁게 국면을 운영했고, 이 9단은 계속 두드렸으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덤을 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백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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