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10년 전, 체코의 여행가이자 작가, 사진가인 엔리케 스탄코 브라즈가 인도와 중국을 거쳐 인천 제물포항에 닿았다. 육로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브라즈는 자신의 스테레오 카메라로 80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이 사진들은 그의 책 ‘중국, 여행 스케치’에 실려 먼 유럽의 독자들에게 생생한 조선의 일상을 전했다.
체코국립박물관 산하 나프르스트코보 박물관이 소장한 브라즈의 사진들이 1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14일부터 6월 12일까지 ‘1901년 체코인 브라즈의 서울 방문’ 특별전을 연다. 브라즈의 사진뿐 아니라 주한 체코대사관의 협조로 처음 한자리에 모인 한·체코 교류에 관한 여러 사료를 선보인다.
전시장에 걸린 브라즈의 사진은 총 53점으로, 서울에 머문 1901년 4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찍은 거리, 궁궐, 민가, 명소 등을 담고 있다. 돈의문, 탑골공원, 경복궁과 같은 건물은 물론이고 남대문로 상점가, 성경을 읽고 있는 가정, 활을 쏘고 있는 양반들의 모습 등 서울의 다양한 일상이 소개된다. 이들 가운데 경복궁 신무문에서 후궁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서양식 시계탑, 창덕궁 낙선재의 후원인 화계를 찍은 사진 등은 현재 실물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자체로 귀중한 사료다.
다른 체코인들이 남긴 기행문과 소설, 일러스트 등도 함께 전시한다. 조선을 소재로 한 최초의 체코 소설 ‘동양의 불’(1902), 친일파와 애국자 남매의 갈등을 그린 바르보라 마르케타 엘리아쇼바의 소설 ‘순애와 기태’(1944), 일본 식민지배의 문제를 지적한 이르지 빅토르 다네시의 기행문(1923) 등은 당시 체코인들이 한국에 가졌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 한국 박물관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1901년의 종로와 2011년의 종로를 비교한 사진, 브라즈의 스테레오 사진 필름 감상 코너 등 이색적인 전시도 볼거리다.
14일 열린 개막식에는 아로슬라프 올샤 주한 체코대사를 비롯해 영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14개국 대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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