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살인사건은 사회문제 작품으로 소통 펼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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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4일 03시 00분


■ 가족간 불화를 말하는 극작가 고연옥 씨

“2006년 제가 사는 동네에서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초등학생 2명을 납치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유인해 뒷산으로 끌고 가 살해한 건데 정남규가 자백할 때까지 아무도 몰랐어요. 소름이 끼쳤죠. 제 아이들도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없어져서 여기저기 찾고 난리를 친 적이 여러 번이었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생 딸과 1학년생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극작가 고연옥 씨(40·사진)의 아찔한 기억은 연극 두 편의 모태가 됐다. 5일부터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내가 까마귀였을 때’(임영웅 연출)와 21일 서울 용산구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개막할 ‘주인이 오셨다’(김광보 연출)이다.

‘내가 까마귀…’는 다섯 살 때 잃어버린 막내아들을 13년 만에 찾은 중산층 가족의 불화를 그렸다. 밑바닥 인생을 살던 막내아들은 처음엔 고마워하다가 점차 가족이 감춰왔던 ‘불편한 진실’을 들춰내는 야수로 돌변한다. ‘주인이 오셨다’는 한국말도 못 배우고 노예처럼 혹사당하는 흑인 엄마에게서 태어나 차별받던 혼혈아들이 연쇄살인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가족 간 권력관계의 최하층인 어미에 대한 증오가 참사를 낳는다.

일상을 일순간 낯설게 만드는 섬뜩함이 두 작품을 관통한다. 1994년 아동문학 작가로 등단한 그가 극작가로 변신해 발표한 작품은 모두 10편. 데뷔작 ‘인류 최초의 키스’부터 ‘발자국 안에서’, ‘달이 물로 걸어오듯’ 등 모두 섬뜩한 범죄와 연관된 작품이다.

“1995년부터 5년간 부산지역 월간지 기자와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사건기사를 심층 취재한 경험이 큰 것 같아요. 존속살해나 연쇄살인처럼 반복되는 사건의 이면에는 항상 사회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죠.”

그는 연쇄살인사건을 “사이코패스의 개인적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우리 사회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작인 ‘발자국 안에서’가 묻지 마 살인이 벌어지는 익명의 공간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면 ‘주인이 오셨다’는 근대화한 사회와 달리 여전히 반근대적 폭력에 지배받는 가족 내 권력관계가 연쇄살인을 촉발했을 가능성을 짚는다.

‘내가 까마귀…’는 한국사회에 드리워진 불안이 과거를 인정하지 않고 화해하지 않으려는 심리와 연결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쓴 작품이다. “과거는 그림자와 같아요, 과거가 없는 사회는 그림자가 없는 사람과 같죠. 그림자 없는 사회는 뿌리 없이 부유하는 사회이고 그만큼 위험한 사회가 되는 거죠.”

이처럼 그가 다루는 소재나 주제는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작풍은 상징적이다. ‘까마귀’는 험하게 자란 막내아들의 별명이지만 오히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 가족들을 상징한다. ‘주인’은 주인공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의 주인을 말하는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서는 사람을 상징한다. 소설가와 방송작가를 거쳐 희곡작가가 된 그는 “희곡을 만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라면서 “돈은 안 되더라도 희곡을 통해 계속 사회적 소통을 펼쳐가겠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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