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이면서도 도발적인 김희애,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주부 김남주, 천방지축이지만 사랑스러운 공주 김태희와 까도남 현빈이 빛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최근 패션계에서는 ‘눈’이 재산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던 옛말은 눈의 생물학적 가치만을 언급했지만 요즘 패션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재능은 안목이다. 뛰어난 안목으로 콘셉트에 맞는 상품만을 추려 갖춘 멀티숍들이 큰 인기를 끄는 한편,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에 관심을 갖게 된 대중은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20세기 패션을 좌지우지한 것이 천재적 디자이너의 몫이었다면, 21세기의 패션을 움직이는 힘은 폭발적으로 생산과 재생산, 복제를 거듭하는 패션 중에서 진짜 아름다운 것을 골라내는 스타일리스트들이 쥐고 있다.
대중의 욕망을 꿰뚫어보는 사람
스타일리스트란 모델의 머리 스타일부터 의상, 구두, 액세서리 등을 서로 조화롭게 꾸며주고 전체적인 콘셉트를 잡아주는 패션계 전문직이다. 무(無)의 상태에서 어떤 영감을 갖고 새로운 의상을 창조해 내는 사람이 의상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스타일리스트는 기존의 것들을 독창적인 콘셉트로 새로운 이미지와 스타일로 만들어 낸다.
이효리, 임수정의 스타일을 맡고 있는 한혜연 스타일리스트는 “요즘 스타일리스트는 단순히 패션 스타일링뿐 아니라 광고 촬영이나 프로모션 행사 콘셉트를 잡는 감독 역할까지 한다”며 “일부 톱 스타일리스트들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불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작 국내에서 스타일리스트란 직업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 5, 6년 새 일이다. 그 전에는 흔히 ‘코디’라 불리며 연예인들의 옷심부름을 하며 로드 매니저보다 더 낮은 대우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거대화, 전문화되어가면서 유명 연예인과 밀접하게 움직이는 스타일리스트들은 과거 ‘스타의 시종’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현대 패션의 이미지 메이커이자 트렌드세터로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김남주의 ‘여왕룩’으로 명성을 얻은 김성일 스타일리스트는 “예전에는 연예인 측에서 이런 이런 스타일을 구해달라고 했지만 요즘은 스타일리스트에게 극중 캐릭터를 분석해서 스타일링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스타 못지않게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도 받는다. 각종 케이블TV 패션 관련 프로그램이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섭외 1순위다. 워너비 스타들을 탄생시키는 스타일리스트는 이제 그들만의 개성과 감각으로 ‘아이콘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셈이다.
패션쇼에서 런웨이 위 모델만큼 미디어의 주목을 끄는 이들은 바로 쇼 관람석의 첫 번째 줄에 앉은 인사들이다. 과거에는 유명 연예인이나 패션잡지 편집장, 바이어들이 그 자리에 앉았다면 요즘은 스타일리스트들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C2면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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