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14>이동익 가톨릭 중앙의료원 원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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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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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자선을 위한 도구
신의 영역을 담아 가난한 사람을 돕죠

‘빛이고 생명이신 주님, 삶의 무게를 덜어주소서.’ 빛과 그림자는 인간의 삶이다. 구원의 십자가는 그 절묘한 조화 속에 서 있다. 전농동 성당, 2005. 이동익 신부 촬영.
‘빛이고 생명이신 주님, 삶의 무게를 덜어주소서.’ 빛과 그림자는 인간의 삶이다. 구원의 십자가는 그 절묘한 조화 속에 서 있다. 전농동 성당, 2005. 이동익 신부 촬영.
《최고경영자(CEO)가 된 신부가 있다. CEO가 되기 전에는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는 교수,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 바티칸 교황청 생명학술원 회원 등으로 활약하던 학자이자 생명윤리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2009년 8개 병원에 총 2500여 명의 의사 및 교수, 5200여 병상을 가진 국내 최대 규모의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수장이 됐다. 주인공은 이동익(레미지오·55) 원장신부. 그는 취임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 의료원에서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원장신부는 오래전부터 사진을 찍어 왔으며 지난해엔 사진전도 열었다. 생명윤리와 병원 경영은 인간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겠지만 사진과는 어떤 연관관계가 존재할까 궁금했다. 그의 사진은 어떤 모습이고 솜씨는 어떨지 궁금해 찾아간 가톨릭중앙의료원장실 앞 복도에는 그가 직접 찍은 야경사진 등이 걸려 있었다. 한눈에도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우선 1만 원을 내겠습니다.(자료 조사를 해보니 이동익 신부는 트위터로 ‘일만원의 행복당’을 만들었다. 돈이 없어 진료받을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나눔의 손길을 만든 것. 지난해 4월부터 의료원장실 방문객에게 직접 커피를 타 주면서 한 잔에 1만 원을 받았고 현재 그 기금은 2800만 원을 넘었다.)

“하하, 아셨군요. 생명은 신성한 것이니 돈이 없다고 치료를 못 받아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해냈죠. 많은 분들이 취지에 공감해 1만 원씩 흔쾌히 내주세요. 돈도 돈이지만 원장실이 폐쇄적이지 않고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사진은 신부가 되고 난 뒤 배웠나요.

“제가 가톨릭대 1학년 때인 1975년부터 배웠어요. 주로 학교 행사 위주의 사진을 찍기 위한 사진반이 있었는데 거기에 가입했습니다. 사진 찍는 방법은 선배들에게서 배웠고 사진 제작은 당시 학교에 흑백암실이 갖춰져 있어 확대기에서부터 약물 타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작업하며 깨쳤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신 거네요.

“제가 1983년도에 신부가 되고 난 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돌아온 1991년까지는 사진을 제대로 했다기보다는 기초를 익히고 여러 풍물을 찍고 즐기는 수준이라고 봐야죠. 사진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것은 1992년 명동성당에 개설된 사진 관련 문화강좌를 맡으면서부터입니다.”

―신부님이 직접 가르치셨나요.

“사진 문화강좌를 수료한 사람들의 모임인 ‘예수님의 사진 벗들=JPF’라는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지도신부를 맡게 되면서 그 문화강좌도 자연스럽게 제가 하게 됐어요.”

―신부님의 사진 강의에 낯설어하지 않았나요.

“명동성당에서 하는 문화강좌였던 만큼 많은 분들이 신자라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그때부터 2005년까지 무려 13년 동안 그 강의를 이어 왔지요. 제가 여기로 오는 바람에 다른 신부님에게 넘겼는데 사실 지금도 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저도 사진이론을 제대로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럼 사진 제자들도 많겠습니다.

(사진1) ‘인생’ 연작 중 동행의 모습을 찍은 사진. 2002
(사진1) ‘인생’ 연작 중 동행의 모습을 찍은 사진. 2002
“처음 5년 동안은 석 달짜리 강의 때마다 100∼150명 정도 오셨으니 그분들만 해도 2000명은 되겠죠. 그 뒤로는 조금씩 줄었지만 13년 모두 합하면 상당할 겁니다. 수강생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 야외로 사진을 찍으러 나갔고 잘 찍은 사람에겐 시상도 했어요. 2년에 한 번씩은 해외 출사도 갔고요. 이분들 중 90% 이상은 사진기에 필름을 집어넣는 기초부터 배운 사람들인데 사진에 매력을 느껴 전공을 바꾸거나 사진을 다시 공부한 분, 직업으로 사진을 하시는 분이 여러분 계셨지요. 회원 중에는 대한민국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분도 2명이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보람 있었나요.

“진짜 보람찬 일은 따로 있습니다. JPF는 해마다 한 번씩 그룹사진전을 열었어요. 이 사진전을 통해 나오는 수익금이 매년 2000만∼3000만 원 정도였는데 이 돈으로 13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 돕기, 입양원, 미혼모의 집 등을 도와주는 생명존중운동으로 이어졌죠. 돈뿐만 아니고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서 입양원에서 애들 사진도 찍어주고 노인들 영정사진도 찍어드리는 사진봉사도 겸했고요.”

―이런 JPF가 가톨릭계에서 사진의 뿌리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한국 가톨릭에는 크게 가톨릭사진가협회와 JPF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사진가협회는 직업적으로 사진을 하시는 분이 많은 반면 JPF는 순수 아마추어 동호인이 많은 것 같습니다. 성직자 중에도 서울성모병원 최대식 신부, 도곡동 성당 김완석 신부 등 여러분이 사진을 좋아하십니다.”

―신부님도 사진으로 수상하신 적이 있으시죠.

“1993년 동아사진살롱 콘테스트, 1994년 사협 사진 콘테스트에 입선한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요 정도면 만족한다’ 싶어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다가 2005년도에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 출품해 공짜 비행기 표를 받기도 했지요.”

―주로 쓰시는 장비는….

“필름 시절에는 다양한 카메라를 썼고요. 디지털이 되면서 캐논 5DMarkⅡ를 주로 씁니다. 화각이 넓고 색 재현이 부드러워 좋아요. 라이카가 사진이 날카로워 보인다면 캐논은 따뜻하고 부드러워 보여요.”

사진과 관련해서 성직자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은 역시 종교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신부님의 사진세상이 궁금합니다.

“저도 대부분 사진 하시는 분들처럼 처음에는 꽃, 풍경, 인물 등을 찍다가 서서히 사람이 사는 모습을 찍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자연을 찍다가 자연과 사람이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찍고 있는데 결국은 인간을 찍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요.”

―성직자로서 일반인과 미학적으로 다른 시각이 있을 텐데요.

“포토그래피는 포토는 ‘빛’, 그래피는 ‘그리는 그림’의 합성어잖아요. 즉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 사진인데 빛이 없는 사진은 생각할 수 없죠. 사진은 제대로 된 빛을 얻기 위해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어려움과 고생을 겪지만 그 빛이 잘 표현됐을 때 그 기쁨은 너무나 크잖아요. 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가톨릭에서 빛은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니만큼 의식적으로 사진 속에 신의 계시를 느낄 수 있는 영성(靈性)이 깃든 사진을 찍으려 합니다.”

―영성적인 사진에 대한 견해가 있으신가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자연과 사람이 아닐까요. 저는 성직자로서 영성적인 표현을 위해 시간적으로는 빛이 적은 새벽이나 해가 진 무렵에 사진 찍기를 즐깁니다. 적은 빛이 큰 효과를 보이며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아요. 소재는 자연과 사람의 어울림에 초점을 맞춰요. 그렇다고 외견상 아름다운 모습만을 찍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이고도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낀 건데 그것들은 일상의 삶 속에 모두 있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의미 있고 그 안에 메시지가 있어요. 하느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 것이죠. 그것을 찾아 찍고 싶어요. (3장의 연작 사진을 보여주며) 인생을 사진으로 표현했어요. 처음에는 여럿이 함께 살아가다 결혼하면 둘이 되었다가(사진1) 나중에는 결국 혼자 하느님한테 간다는 것을 표현했어요.”

―앞으로 사진 관련 계획이 있다면….

“지금은 제가 바쁘지만 언젠가는 다큐멘터리 사진 분야에서 특정 주제를 잡아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아직까진 단순하게 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만 있고 구체적인 주제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이 자리를 떠나면 몇 개월 동안 카메라를 메고 훌훌 날아가 하느님의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주제에 천착할 날이 오지 않겠어요.”

우리나라 대표적인 생명윤리 전문가로서의 그의 견해와 CEO로서의 병원 운영에 관해서도 물었다.

―생명운동을 전개하시는데….

“우리 사회는 너무 부정적인 것이 많아요. 전쟁, 테러, 폭력, 낙태 이런 것들은 다 생명에 반하는 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이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인갑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이 바로 생명윤리입니다. 안치환의 노래처럼 사람은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거든요. 이 사회를 위해 그런 악한 것들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되겠죠. 우리가 사람들이 아름다운 존재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가 애쓰는 생명운동입니다.”

―취임 일성으로 하신 10년 안에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배출은 가능합니까.

“제가 노벨 의학상 얘기를 하니까 주변에서 웃는 사람도 있었어요. 저는 정말 농담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10년 안에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동기를 갖게 하겠습니다.”

체중도 줄일 겸 땀나는 운동을 한다고 이종격투기를 택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이동익 원장신부. 이는 그가 아직 젊고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 힘은 2014년 개원을 목표로 자동차 사고 재활전문병원 설립, 환자로 들어와 가족이 되어 나가는 병원 만들기, 로스앤젤레스(LA) 미주법인을 통한 외국인 진료 확대 추진 등 병원 경영에서 확연히 느껴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내 우리나라의 대학병원들은 외래 위주의 시스템에서 연구 중심 대학병원으로 바뀐단다. 여기서 선도적으로 나가면 국내 최고의 대학병원이 될 수 있다는 것. 노벨 의학상 수상자 배출 약속은 이에 대한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노력의 결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가톨릭중앙의료원 의사들의 논문 게재건수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CEO의 정신적 안식처이자, 하느님의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에게 ‘나눔의 손길’이 되어 주는 사진. 이처럼 이동익 원장신부에게 사진은 늘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오래된 친구와 같았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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