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이 지난달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한 것을 놓고 문화재청과 고고학계가 대립하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토론회가 19일 오후 2시 서울 덕성여대 평생교육관에서 열렸다. 한국고고학회 한국역사연구회 등 8개 학술단체가 주관한 ‘2011 매장문화재법 시행규칙과 발굴조사 규정에 나타난 두 가지 현안과 해결방안’ 토론회. 문화재청 담당자와 고고학 교수, 발굴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토론은 4시간 가까이 진행됐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토론의 쟁점은 ‘발굴조사 기준’과 ‘조사원의 자격’ 문제. 문화재청은 “과잉 발굴을 막고 발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기준안”이라는 입장이고 고고학계에선 “되레 문화재를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날 염정섭 한림대 사학과 교수는 먼저 ‘조선 후기 논밭 발굴조사 제외’에 대해 반발했다. 염 교수는 “발굴조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를 고사시킬 위기”라고 비판했다. 새로 제정된 기준에선 조선시대 후기 논밭이나 삼가마(삼을 삶던 가마)는 근현대 경작지와 ‘대동소이’하다는 이유로 발굴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대해 신희권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은 “땅속에 있는 모든 문화재가 다 중요하지만, 사료에도 중요한 사료가 있고 덜 중요한 사료가 있다. 경작지는 면적이 넓고 시대적으로 중복이 심하다는 특징이 있다. 굳이 전체를 발굴하지 말고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발굴하자는 취지다”라고 답했다.
발굴의 사회비용과 문화재의 가치판단이 부딪치기도 했다. 김범철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발굴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료의 역사적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신 연구관은 “기존의 정밀발굴이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허탕’쳤던 적이 많았다. 불필요한 발굴, 과장된 발굴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은 모두 국민의 부담이다”라고 응수했다.
일제강점기 매장문화재 발굴 불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이인재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문화재청의 발굴 기준에는 일제강점기 매장문화재에 대한 안목이 결여돼 있다. 근대 매장문화재 유산을 발굴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문화재 파괴”라고 지적했다. 이에 신 연구관은 “일제강점기 유적도 중요하지만 혹시 얻을 수 있을지 모를 정보를 위해 모든 지층을 다 팔 수는 없다. 또 정보를 얻는다 해도 근대사 연구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것인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신 연구관은 또 “발굴 조사원 자격기준에서 석·박사 학위 소지자에 대한 별도의 우대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학력 제한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에 마련된 자격기준도 일부 학력차별적 요소가 남아있는 것으로 판단해 2014년 2월 4일까지만 효력을 유지하고 그 이후엔 발굴조사원 자격인증제 같은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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