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 4년만에… 잊혀진 외딴 포구 갈대에 말을 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0일 03시 00분


김신용 시인 새 시집 ‘바자울에 기대다’

천년의시작 제공
천년의시작 제공
김신용 시인(66·사진)이 4년 만에 시집 ‘바자울에 기대다’(천년의시작)를 냈다. 시집에는 2006년부터 그가 살고 있는 경기 시흥시 인근의 소래포구가 펼쳐진다. 광활하고 장엄한 포구가 나오지는 않는다. 소외되고 잊혀지는 작은 해안가의 사물들이 주인공이다.

‘노골(露骨) 같네/맑은 이슬의 뼈 같네//제 몸의 물기란 물기 다 말리며, 뼈 하나로 서서/울타리도 못되는 울타리로 서 있는 것/마당이란, 안의 바깥이며 바깥의 안이라고 하지만/안과 밖의 경계도 지우며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것’(시 ‘바자울’에서)

갈대나 수수 등을 이어 만든 울타리인 ‘바자울’은 시인이 시집 내내 천착하고 있는 주요 소재다. 19일 출판사에서 만난 김 시인은 “도시적인 개념으로 보면 울타리 같지도 않은 게 바자울이죠. 하지만 그 속에는 원초적인 따뜻함과 생명이 들어있습니다”라고 했다.

바자울에서 뽑아낸 뼈의 이미지는 시 ‘다시, 바자울에 기대다’에서 ‘살’(생명)로 되살아난다. ‘회를 뜬 자리/살 한 점 붙어 있지 않은 앙상한 생선의 뼈만 떠오르지만/그 뼈를 끓이면, 한 끼의 공복을 메울 양식이 된다’

김 시인은 “주변의 눈에 띄는 사물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갈대숲은 ‘갈대 하나 떼어놓으면 바람 잠시 앉았다 갈 의자 하나 되지 못하지만, 수천 수만의 몸이 얽혀 있으니 바람을 견디는 울’이 되고, 노을 진 염전은 ‘해바라기처럼 떠오르는 해가 노을의 밭을 경작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김 시인은 전남 완도군 신지도에 살며 2005년 시집 ‘환상통’을 냈고, 충북 충주의 산골마을인 도장골에 살며 ‘도장골 시집’을 묶어냈다. 거처를 옮기며 글을 쓰는 ‘방랑 시인’인 셈이다. 연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사물을 잠시 보고서는 알 수 없지요. 그 속에 들어가 살며 육화된 시, 만져볼 수 있는 시를 써야 제 스스로 공감이 갑니다.”

“제발 이사 좀 그만 가자”는 부인의 성화에도 김 시인은 동해안이나 남해안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살 곳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몇 년 뒤에는 작은 어촌 풍경을 담은 새 시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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