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27>상추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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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1일 03시 00분


농부의 밥상에서 수라상까지
貴賤의 구분없이 누구나 즐겨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보통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을 꼽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또 한국인의 정서상 가장 한국적인 음식은 상추쌈이다.

상추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예전부터 농부의 밥상은 물론이고 궁궐 대왕대비의 수라상에도 올랐으니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상추쌈을 즐겼다. 게다가 고려 때부터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쳤으니 한식 세계화의 선구적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쌈을 아주 좋아한다. 오죽하면 숙종 때의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은 커다란 잎사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으로 싸먹는다고 했다. 상추를 비롯해 호박잎, 배추, 깻잎과 곰취는 물론이고 미나리, 쑥갓과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으며 김과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초로도 쌈을 싸서 먹을 정도로 유별나게 쌈을 좋아한다.

쌈 중에서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상추쌈이다. 이익은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것은 쌈을 먹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조선시대에 벌써 상추쌈은 국민적인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상추쌈은 농부와 서민들이 주로 먹었을 것 같지만 왕실의 가장 높은 어르신인 대왕대비도 상추쌈을 즐겨 먹었던 모양이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의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조리를 하지 않은 상추였으니 쌈을 싸 먹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어지는 승정원일기의 내용은 실수로 상추에 담뱃잎(남초·南草)이 섞여 들어갔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인데 숙종은 그럴 것 없다며 용서를 한다. 숙종 3년 4월 26일자의 기록이다.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 역시 불암천으로 천렵을 가서 갓 잡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기울이며 상추에 밥을 싸 먹었다는 글을 남겼다.

왕실 최고 어른부터 막강한 세도가까지 모두 상추쌈을 즐겼던 것인데 한국인의 상추쌈 사랑은 속담을 보면 알 수 있다.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고 했으니 얻어먹는 처지에서도 눈치를 보며 상추쌈을 싸먹을 정도다.

이렇게 상추쌈을 좋아했으니 우리 상추쌈은 중국에까지 소문이 났다. 원나라 시인 양윤부는 난경잡영(欒京雜詠)이라는 책에서 고려의 상추를 소재로 시를 읊으며 고려 사람들은 상추로 밥을 싸 먹는다고 주석을 달아놓았다.

원나라 때는 아예 중국에서도 상추쌈이 유행을 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원나라에 끌려간 고려 사람들이 텃밭에다 상추를 심어 쌈을 싸 먹으며 고향의 맛으로 향수를 달랬다고 하는데 고려인들이 상추쌈을 먹는 모습을 보고 몽골인과 중국인들이 따라 먹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중국에서 상추쌈 먹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 중국음식 중에는 상추쌈(생채포·生菜包) 내지 고려쌈(고려포·高麗包)이라는 이름이 보이는데 원나라 때 고려를 통해 전해진 음식으로 보고 있다.

고려인이 퍼뜨린 상추쌈은 명나라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중국 음식 중에 포아반(包兒飯)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름만 보면 쌈밥이라는 뜻이다. 16세기 명나라 때 환관인 유약우(劉若愚)가 쓴 명궁사(明宮史)라는 책에 기록이 있다. 고기와 생강, 파, 마늘 등을 넣고 밥을 비빈 후 상추에다 밥을 싸서 먹는데 요동의 풍속이라고 했으니 우리나라의 상추쌈이 원조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상추쌈을 한식 세계화의 선구적 음식으로 보는 이유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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